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촉발은 지난 2월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공동으로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최근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FTA를 정면 비판하고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왜곡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당 내에서까지 반론이 나오고 있다.
논란은 얼핏 졸속 추진을 비판하는 여론과 충분히 준비됐다고 항변하는 정부 사이의 설전으로 비친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비슷하게 정부의 졸속을 비판한다고 해도 한·미 FTA를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따라 결론이 확연하게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다. FTA 문제가 그동안 대학 입시의 단골 소재가 돼 온 것도 이 부분이다. 앞으로도 계속 출제될 가능성이 크므로 학생들로서는 FTA 자체에 대한 자기 판단을 명확히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 한·미 FTA 과연 졸속 추진인가
정 전 비서관이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일 FTA 졸속 추진을 비판하고 나서자 정치권에서도 정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요 논리는 급박한 일정이다. 정부가 내년 3월까지 협상을 타결지은 뒤 2008년부터 발표시킨다는 시간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간 교역규모 35억 달러인 칠레와 FTA 협상을 개시해 타결하는 데 3년1개월이 걸렸고,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기까지는 4년7개월이 소요됐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교육규모 720억 달러로 칠레의 20배가 넘는 미국과 1년1개월 만에 FTA 협상을 타결짓고 1년10개월 만에 발표시키겠다는 것이다. 시간표 자체가 무리다.'(신문 사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치권과 대다수 언론은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에 추진하는 것이라는 입장. '김종훈 외교통상부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12일 인터뷰에서 "지난 2003년 8월에 정부는 FTA 추진 로드맵이라는 걸 추진했고, 그때 경제장관 회의를 거쳐 국무회의까지 보고가 됐다."며 "이 로드맵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1, 2년 안에 싱가포르, 아세안, 멕시코 이런 나라들하고 FTA를 체결하고 3년 이상의 중기 목표로 미국, EU, 중국 같은 거대 경제권하고 FTA 체결을 추진하기로 돼 있다."고 반박했다.'(인터넷언론 기사)
뉴스나 사설, 칼럼 등에만 의존해 어느 입장이 타당한지 결론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가능한 범위에서 스스로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고 판단의 근거들을 최대한 풍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정부가 어떤 과정과 일정 속에서 FTA를 추진하고 있는지는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사이트(www.ft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한·미 FTA 자체에 대한 상반된 논리
졸속 추진 논란으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각종 단체와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의 불길도 더 거세졌다. 바로 이 대목에서 졸속 논란을 비판하던 비슷한 목소리들이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의 추진 과정에서 점차 선명해질 상반된 논리의 내용과 근거를 분명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 찬성론
한·미 FTA가 농업이나 서비스 분야에는 다소 피해를 주겠지만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며, 경제산업 제도와 관행을 질적으로 개선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는 세계 최대 미국 시장의 안정적 확보와 투자유입 증대,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의 업그레이드와 국가 경쟁력 제고, 대외신인도 제고 등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찬성론에서 나오는 흔한 비유가 조선시대 문호 개방이다. '우리는 19세기 초 이 땅에 통상을 요구하며 문호 개방을 강요했던 미국을 기억하고 있다. 신미양요(1871년)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이 직접 상선을 이끌고 군대를 동원, 통상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때 조선이 그들과의 대화에 성공하여 일찍 통상에 나섰다면 조선의 근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며, 이후 역사 전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한다.'(국정브리핑) FTA와 문호 개방에 대한 역사 인식의 문제를 연결시켜 물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 반대론
한·미 FTA가 '제2의 IMF'로 불릴 만큼 국가 경제·사회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장 심각한 분야가 농업이다. "한미 FTA로 축산, 곡물, 채소, 원예 등 농업 분야는 모두 쑥대밭이 될 것이고, 그 결과 농촌 인구 350만 명 중 절반은 농촌을 떠나야 할 것이다."(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인터뷰) 의료비와 약값 폭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부정적이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는 19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 '멕시코 정부는 NAFTA를 통해 과대한 북미시장을 개척하고 고용기회도 늘 것이라고 선전했다. 외견상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2003년 멕시코 수출의 90%, 수입의 85%가 미국을 상대로 이뤄졌다. 멕시코와 미국 양방향의 해외 투자도 급증했다. 그러나 반대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에서 가벼운 경기 후퇴가 일어나도 엄청난 침체를 겪게 됐으며 사회 양극화도 심해졌다. 성장률 3%, 불안정 취업률 25%, 빈곤층 인구 비율 40%가 협정 12년째인 멕시코의 초라한 성적표다.'(신문 칼럼)
우리 정부가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유리한 통계만 골라서 인용하는 문제도 지적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한·미 FTA의 추진 근거로 제시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무려 72억7천만 달러로 추정되자 이를 뺀 채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난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잠복한 반미 논쟁
FTA에 대한 찬반 논란은 개방뿐만 아니라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곧잘 연결된다. 찬성론은 이를 애써 부각시키고 나무란다. '21세기 첨단시대에 느닷없이 경제식민지 타령이 튀어나오는 게 기가 막힐 뿐이다. 어떻게 세계 11위 경제대국에서, 제3세계조차 내팽개친 낡은 종속이론이 버젓이 리바이벌되는가. 어떻게 자칭 진보주의자의 입에서 "우리가 미국의 막강한 자본력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 애초부터 한·미 FTA는 그만두는 게 낫다."는 발언이 나올 수 있는가. 누구보다 진취적이어야 할 진보세력이 얼마나 심각한 패배주의에 빠져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신문 사설)
이념논쟁으로 비화시켜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보수층의 의도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무수한 정책 영역 중의 한 사안에 불과하다. 여기서 내려진 특정인의 가치 판단으로 그의 이념을 규정할 수는 없다. 외교안보 영역의 동맹파가 협정의 조기 체결을 반대할 수도, 그 영역의 자주파가 이를 찬성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념이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제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기출·예상문제
·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간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간 경제력의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시오.(경희대)
· WTO 체제 하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이러한 다른 나라의 시장 개방이 우리나라에 주는 시장 기회에 대해 설명하시오.(서울대)
· 농산물 수입 개방이 소비자, 생산자에게 주는 불이익과 혜택에 대해 말하시오.(서울대)
·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경제 애국주의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국가 간 무역장벽 철폐라는 FTA의 근본 취지와 배치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해 보라.(이슈&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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