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프랑스의 힘!

70년대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일상생활에서 '노동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소설속에서 접하게 되는 노동자는 노동현실과 사회정치현실에 저항하는 움직임과 함께 있어 뭔가 두려운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80년대, 노동자라는 말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쓰는 말이었고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면서야 일상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되었다.

레스토랑에 취직하여 빵을 만드는 삼순이가 노동자인가? 아닌가? 하는 간단한 질문에 청소년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다.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 "궁"에 나오는 상궁이나 내관은 노동자인가? 아닌가? 물론 노동자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청소년은 자기 자신이 노동자인 것을 잘 모른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는데 합류하기도 한다. 자신이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노동현실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총파업을 하고 100여 만 명이 시위에 참가하고 몇 주 간의 투쟁 끝에 프랑스 정부가 새노동법에서 최초 고용계약제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떤가? 사회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공감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요구나 투쟁은 비난을 받는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노동정책에 대해 자기주장을 하고 파업하고 시위하면 비난을 받는다. 당사자들의 주장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충분히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평화롭게 알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고함치는 모습만 야단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프랑스는 어째 고등학생들까지 동참했을까? 그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선동했다고 교사들을 비난하지 않았나?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집회에 참여한다고 야단치고 집회에 참석하면 혼날 것이라고 조.종례 시간에 학생들을 단속하지 않았나? 파리 시민들은 차가 밀리고 시끄럽다고 불평하지 않았는지?

어째 프랑스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아직 시행도 안된 법을 놓고 어떻게 미리 결과를 예단해서 파업하고 시위까지 하는가? 우리는 파견직, 기간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뼈아픈 현실을 몇 년동안 체험하고서도 해결을 위한 힘을 모으지 못하는데. 프랑스 정부는 왜 큰 소리 한번 못내고 방어적으로 있다가 결국 노동자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마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파리 제 10대학 학생지도부의 인터뷰를 보았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다한다. 물론 우리도 그런 추세가 되어간다. 청소년 알바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노동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최초고용계약제가 자신의 삶과 프랑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분명하게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사업장의 44%가 노동법을 위반해도 문제인줄을 노사 양측 모두 모르는 현실이다. 서울시 용역노동자의 28%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는데 서울시뿐이겠나? 근로기준법 내용은 물론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들도 많다.

새 노동법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여준 프랑스 사람들의 성숙함, 프랑스의 힘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학교교육을 통한 노동법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전제되어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다른 계층의 시민들조차 그 문제가 현재의 노동자들과 미래의 노동자들의 삶에 끼칠 영향을 알기에 파업과 시위의 불편함을 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기업가와 우파적 정부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기본전제가 있다면 합의가 훨씬 쉽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사갈등과 노사정 갈등이 많다고 탓만 하지 말고 노동법 교육을 모든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자. 그 길이 사회적 합의를 앞당기는 길이 되지 않을까?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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