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베른의 기적'을 일궈낸 독일이 2006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그 영광의 재현을 꿈꾸며 2003년에 제작한 영화 '베른의 기적'(Das Wunder von Bern)'은 독일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당시 슈뢰더 수상도 영화를 보면서 몇번 씩이나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고 한다.
예선에서 헝가리에게 3대8로 대패한 독일이 다시 맞붙은 결승에서 2골을 먼저 내주고 내리 3골을 넣어 3대2로 승리, 우승을 거머쥐는데 결정적 역할을 헬무트 란이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년 '마테우스'의 우상이다. 영화에서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한 가족의 화해와 가족애를 확인해주고 거대한 꿈의 실현을 통해 전후 피폐한 독일을 라인강의 기적으로 승화시킨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월드컵 도전사의 첫 장을 기록하긴 했지만 참담한 패배로 16개 참가국 중 16위라는 아픈 기억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후 32년 만에 우리나라가 본선 진출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54년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첫 출전하던 해에 태어난 나는 당시 서른 셋이었고 심한 축구 열병을 앓고 있었다. 한국의 월드컵 출전에 감격한 나는 당시 항공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사무실에선 연일 월드컵 경기에 대한 내기가 벌어져 승리 팀과 스코어를 함께 적중시킨 직원이 평균 20배의 배당금을 챙기기도 했다.
최강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에서 0대3으로 뒤진 상황이긴 했지만 박창선이 날린 30여m의 중거리 슛이 골망을 출렁였을 때 가슴이 터질 듯 환호하던 느낌이 생생하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와 TV 화면에서 박창선의 골이 가끔 나올때 한국 축구사에 기록된 그 역사적인 순간을 되새기게 된다.
불가리아를 상대로 김종부가, 또 다른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맞아 최순호와 허정무가 후반에 나란히 터뜨린 골의 기억도 잊지 못한다. 비록 첫 승을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팀은 선전했고 그만큼 아쉬움도 없지 않았던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당시 김정남 대표팀 감독이 "정보도 전혀 없고 경험도 전무했다. 지금처럼 대표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환경만 뒷받침되었다면 해볼 만 했을 것이다"라고 나중에 회고했을 때 여건과 운이 따랐다면 얼마든지 기적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멕시코 월드컵 이후 16년만에 자주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2002년 월드컵 때의 감동을 맛보게 되었다. 2002년은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지만 한국의 축구팬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지 않을까? 2006년 6월, 한국대표팀이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나가길...
권순진 (시인)
※ 권순진씨는 시인으로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이 월드컵대회에 첫 출전한 1954년에 태어난 그는 1986년 월드컵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터뜨린 한국의 첫 골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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