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되지 않은 삶과 음악
나는 백화점보다 서문시장이나 칠성시장 노점에서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한다.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며 유니폼을 멋있게 입고 명품이 있는 화려한 진열대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곳보다 산지에서 바로 가져 온 물건을 바쁘게 손질하며 판매하는 시장에 더 호감이 간다.
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사람들이 붐비는 길거리나 시장에서 호떡, 어묵, 떡볶이, 순대 등을 즐겨 사먹는다. 시끄럽고 비위생적이라 말하는 주위 사람들도 있지만 그곳에서 포장되지 않은 진실된 삶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십여년 간 나의 이 버릇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시장노점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삶의 진지한 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한 시간만큼이나 소복이 캐 온 나물들을 정성스럽게 분류해 놓고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늦은 시간까지 손님들을 기다린다. 검게 탄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졌으나 눈빛만은 청순하다. 유행과는 무관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은 필요에 의해 걸쳐져 있으며 때 묻은 소매사이로 보이는 손마디에서는 강인한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라는 나의 말에 할머니의 표정에는 기쁨이 넘친다. 마음 가는 대로 듬뿍 집어서 검은색 비닐봉지에 모양 없이 담아준다. 순간 행여 적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빛이 할머니의 얼굴에 비쳤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을 놓는다. 그러면서 조리법까지 가르쳐 주며 맛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신사복차림의 내 손에 들려진 비닐봉지는 외관상 어울리지 않지만 삶의 진지한 모습을 본 나의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일상용품에 대해서도 내용보다 포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듯하다. 보기 좋게 포장되는 상품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마음이 자꾸 닫혀가고 삶이 각박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 취향도 마찬가지이다. 인위적으로 많이 다듬어진 음악보다는 거칠더라도 악기가 가진 음색과 볼륨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이 지루하지 않으며 생명력을 가진다. 지나치게 정교히 포장된 음악작품은 곧 싫증이 나며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하고 들을 때보다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집중한다. 피아노 소나타의 핵심은 피아노 소리이며 성악예술의 아름다움은 목소리에 있다. 꾸밈 음, 템포의 변화, 강약의 대비 등으로 지나치게 그 작품을 포장할 때 자연적인 미는 사라진다. 이청 화백의 말이 생각난다. "젊어서는 물감을 많이 칠하려고 애썼는데 이제는 물감을 덜어내려고 해요."
이영기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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