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눈앞에 둔 1984년 5월 12일. 늦은 밤 대구시 동구 신천동 동현교회 문 앞에선 난데없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나선 교회목사 부인의 눈에 띈 것은 갓 태어난 남자아기. 아기는 동대구 역전파출소에 기아(棄兒)신고 처리된 뒤 백합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부모를 찾지 못한 아기는 이듬해 3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바다 건너 프랑스로 입양됐다. '오진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기는 이때부터 '니콜라 르말(Nicolas Lemale)'이 됐다.
니콜라(22) 씨가 자란 곳은 프랑스 중서부 백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낭트시 인근 작은 마을. 500여 명이 사는 평화로운 곳이라 마을 사람들은 한국의 여느 시골처럼 주민들이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고 그 덕에 인종차별 등 어려움은 겪지 않고 클 수 있었다.
"알루미늄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소박하고 정이 많은 분들이셨어요. 제가 유일한 자식이어선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큰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어릴 땐 한국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저 자신도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고 컸어요."
자라면서 유럽과는 다른 아시아권 문화에 호기심이 일었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대학에서 항공기술학을 전공한 니콜라 씨는 좀 더 전공 공부를 하기 전 한국과 친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 1년 예정으로 지난 2월 말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스스럼없이 한국을 '내 나라(my country)'라고 부르는 니콜라 씨. 한국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는 그는 서울에서 프랑스어 강사 생활을 하며 입양기관 등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찾아갔다.
고향 대구에 들른 것은 지난달 29일. 1일까지 더운 날씨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자신이 입양되기 전까지 과정을 거슬러 살폈지만 추가로 나오는 단서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참이다. 그는 언젠가 친부모를 꼭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프랑스에서의 삶이 행복하다는 그이지만 친부모를 만나면 자신을 포기하게 된 사연은 꼭 듣고 싶단다.
"비록 저를 포기하셨어도 전 전혀 원망하거나 화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절 키우실 수 없었는지 그 사연만은 꼭 듣고 싶어요.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하고요.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연락처는 홀트아동복지회 대구아동상담소(053-756-0183).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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