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외국인 노동자 커플. 5년 전 한국에 온 구르프릿 씽허(Gurpreet singh·27) 씨와 한국에 온 지 10개월 된 파르민다르 카우르(Panminder Kaur·24·여) 씨. 이 둘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1년 후쯤 인도로 돌아가 결혼할 예정이다.
둘의 만남은 이랬다. 어머니와 동생 둘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 온 파르민다르.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힘든 생활을 해오다 때마침 인도 동향 출신 구르프릿 씨를 만났다. 외로웠던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곳에서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는 이들. 힘들지만 입가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 이유다.
돈벌이 때문에 한 번도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한 터라 매일신문 주말취재팀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은 설레는 데이트였다. 취재차량에 타자마자 두 손을 꼭 잡고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17일 일요일을 맞아 강원도 봉평 메밀꽃밭, 이효석 생가 등을 여행하려 계획했지만 폭우 등 궂은 날씨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이날 오후 시간을 이용, 달성군 가창 일대를 둘러봤다.
처음 찾은 곳은 가창면 용계리 '허브힐즈'. 공원은 온통 향기로운 꽃들로 가득하다. 테마별로 구성된 허브 가든 곳곳에서 연인들을 위한 토피어리 인형, 마술거울, 동화 속 풍차 등이 둘을 반겼다.
수줍음에 고개를 떨구던 파르민다르가 구르프릿에게 다가가 춤추기를 원한다. 톱밥으로 만든 인형커플과 똑같이 양손을 잡고 왼쪽 손을 하늘로 뻗고 스텝을 밟는다. 구르프릿 씨는 "여자 친구가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라며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고 귀엽다."며 얼굴을 어루만졌다.
즐거운 시간은 계속됐다. 둘은 허브힐즈 내 각종 체험장을 돌아봤다. 애플민트, 페퍼민트, 로즈마리 등 맘에 드는 화분을 골라 분갈이하는 시간. 파르민다르가 스피아민트를 골랐다. 인도에선 이 허브잎으로 카레를 만드는 소스에 갈아서 넣는다고 한다. 은근히 풍기는 향이 참 좋다. 애플민트는 인도에선 짜서 식용기름으로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조그만 화분에서 큰 화분으로 옮겨 분갈이가 끝나고 체험장 직원이 선물이라며 그 화분을 전해주자 파르민다르가 "슈크리아(Sukrea·감사합니다)"라며 가슴에 꼭 끌어안는다.
컵 만들기 도자기체험은 마치 영화 '사랑과 영혼'을 연상케했다. 손물레 위에 놓인 점토를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모습은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 비록 작은 컵이지만 온 정성을 쏟아 예쁘게 빚어본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파르민다르는 컵 모양을 하트로 만들고 손잡이 부분을 인도풍으로 말아서 나름대로 솜씨를 발휘했다. 거친 손으로 간신히 컵을 빚어낸 구르프릿은 "인도나 네팔에서도 시장 등 공공장소에서 흙을 빚어 모닥불에 바로 구워 1회용 컵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연인들을 위한 공간 허브힐즈를 뒤로 하고 가창면 우록리로 이동했다. 비가 내리는 중에 호젓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마음에 평온을 안겨다 준다. 둘은 연방 인도말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곳은 임진왜란 때 일본인 장수 중 한 명으로 예의 나라 조선에 귀화한 사야가(한국명 김충선) 장군을 모셔놓은 녹동서원(鹿洞書院).
옛 조선의 운치가 물씬 풍기는 한·일 우호의 광장인 이 서원 일대. 둘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원수처럼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일화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사야가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우록리는 주변 경치가 너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녹동서원에서 김충선 장군의 당시 일화가 담긴 비디오를 보고서야 여행을 마무리했다.
둘은 "다음에 둘이 손잡고 꼭 다시 오고 싶다."며 허브힐즈, 녹동서원의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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