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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장석남 作 '배를 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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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밀며

장 석 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휘번득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힘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지는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힘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시인은 가을 바닷가에서 배를 밀며 문득 떠나간 사랑을 떠올립니다. 잔잔한 가을 바다의 물길을 가르며 떠나가는 배가,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왔다가 떠나가는 사랑에 비유되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나며 남기는 '물 위의 흉터'는 '잠시 머물다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흉터는 아물지 않지요. 사랑은 아무리 밀어내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가 되어 가슴 한 켠에 정박하지요. 그렇지만 가을 호수 같은 깨끗한 사랑의 흉터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흉터는 혼탁한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순결한 사랑은 그 상처까지도 아름답습니다. 비극적 아름다움이기에 오히려 영원합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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