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날 오후,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머리칼이 산들바람에 날렸다. 가슴이 트였다. 팔작지붕 처마 사이로 한폭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솔 숲 건너 하얀 모래톱에 눈이 부셨다. 멀리 병산에 기대 굽이쳐 도는 강물은 모래톱을 끼고 소리없이 흘렀다. 낙동강이었다. 강물을 에두른 절벽 위에는 늘 푸른 소나무들이 병산서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에서 도학을 논하던 서애 류성룡 선생의 모습이 아련했다.
백정이 춤을 추며 소를 잡았다. 중도 부네를 희롱하며 춤을 췄다. 초랭이와 이매가 곁에서 키득거렸다. 선비와 양반은 서로 잘났다며 뽐냈다. 백정이 잡은 소불알을 건네자 선비와 양반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좋다는 백정의 꼬임에 선비와 양반이 소불알을 쥐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아이들이 깔깔댔다. 서애 선생의 서세(逝世) 400주년을 맞은 안동 하회마을 앞. 풍자와 해학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한판 흥겹게 벌어졌다.
낙동강이 마을을 태극모양으로 감싸 흘렀다. 절벽은 가팔랐다. 병풍처럼 둘러선 부용대(芙蓉臺) 아래 백사청송(白沙靑松)이 어우러졌다. 나룻배 한 척만 물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못 속에 살포시 자리한 연꽃처럼 하회마을은 그렇게 부용대와 낙동강, 화산(花山)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삼신당(三神堂)으로, 전통 유교마을의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안동은 서원과 명현과 산이 많다고 해 '삼다(三多)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특히 도산서원, 병산서원, 퇴계태실, 농암종택, 묵계종택 등 유교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녹아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산실이다.
◆병산서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물.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문과 업적을 기린 곳이다.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 등이 있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경관이 일품이다.
◆부용대와 하회마을
하회마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이 64m의 절벽, 부용대. 조선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겸암정사(서애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이 건립)와 옥연정사(탄홍 스님이 선조 19년에 완공)가 부용대의 좌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이 휘돌아 흐른다고 해 이름붙인 하회마을. 조선 초 공조전서 류종혜 선생이 터를 잡은 뒤 풍산 류씨가 6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초가토담집과 전통기와 등 458동이 있다. 만송정 솔숲을 뒤로하고 서애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을 비롯해 남촌댁, 북촌댁, 양진당, 하동고택 등이 있다. 매년 부용대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줄을 이은 뒤 불꽃놀이를 하는 선유줄불놀이가 장관이다.
◆하회탈박물관과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탈박물관에서는 각시탈 부네탈 이매탈 중탈 초랭이탈 등 대표적인 하회탈을 비롯해 봉산탈춤의 취발이, 강령탈춤의 미얄할미, 통영오광대의 홍백가 등 한국의 탈을 두루 볼 수 있다. 일본, 중국, 몽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탈과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의 탈을 모두 모았다. 하회마을 앞 전수회관에는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일요일(오후 3시)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펼쳐진다.
◆한국국학진흥원(유교문화박물관)
유학의 전래와 인물계보, 목판, 멀티미디어 유물관, 문중관 등 유학의 모든 것을 오롯이 담고 있다.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정신문화를 음미해볼 수 있고, 국학문화회관에서는 깔끔한 호텔 등 부대시설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도산서원
퇴계 이황이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닦았던 영남 유학의 구심점이다. 1575년 조선 선조의 교시로 사액서원이 됐다. 도산서당 농운정사 역락서재 등이 있다.
◆봉정사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둥지를 튼 봉정사(鳳停寺).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렸는데, 이 절에 앉았단다. 의상대사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 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히고 푸른 말이 앞길을 인도해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다는 일설도 있다. 선녀가 횃불을 밝혔기에 천등산이라고 했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해 봉정사라 했다는 것.
◆풍산한지공장
한지탁본 뜨기, 한지공예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 이번 주 여행코스:부용대-하회탈박물관-하회마을-병산서원-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안동 구시장-봉정사-풍산한지공장
* '어서 오이소' 다음(19, 20일) 코스는 '갓바위 소원 빌기와 운문사 예불여행-경산·청도' 편입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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