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농촌체험] ⑦의성 용암마을

아침부터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버스 안 체험가족들의 표정도 창밖 날씨만큼이나 어둡다.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길에 짓궂은 빗발이라니….

"집에 있어 봤자 빈둥거리기만 할 텐데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참 좋지 않으세요?" 혼자 우겨보지만 얼굴들은 굳은 채 그대로다.

빗 속을 뚫고 1시간여를 달리자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하지만 버스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좁은 시골길이 낯선 대형 버스의 진입을 거부한다. 선해보이기만 하던 버스 운전기사의 이마에도 순간 깊은 골이 파인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귀한 손님을 맞을 줄 아는 고마운 하늘에 몰래 감사해한다. 마을로 향하는 길, 물안개가 드리운 용암지가 장관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객(客)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핀다.

"와! 경치 한 번 끝내줍니다." "엄마, 저거 바다야?" "아니, 큰 저수지란다. 농사를 짓기 위해 꼭 필요한 물을 가둬두는 곳이야."

마을로 들어서자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구수한 고구마냄새가 먼저 반긴다. 마을 할머니들은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굽은 허리로 금방 만든 인절미를 내오고 훈훈한 인심에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첫 체험은 짚으로 새끼 꼬기. 상품까지 걸린 터라 모두들 열심히 두 손을 비벼 보지만 그리 쉽지 않다. 하긴 결과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새끼줄을 이어 줄넘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고 림보게임도 하는 동안 버스 꽁무니에 매달고 온 스트레스는 푸른 산 너머 멀리 달아난다.

온갖 야채들로 풍성하게 차려진 웰빙 밥상을 물린 뒤에는 마을 어르신의 지도 아래 서예교실이 이어진다. 에헴! 자세를 잡아보지만 글씨는 괴발개발, 제멋대로다. 그래도 '어질게 살자' '서로 아끼며 사랑하자'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말고' 등등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가훈들을 쓰는 동안 가족들은 사랑을 확인한다.

이튿날 아침, 전날 내린 비에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는 비록 없지만 시인 김영랑이 노래한 '비 개인 5월(五月) 아침'의 찬엄(燦嚴)한 햇살은 가득하다.

간밤 주고 받은 막걸리에 조금은 힘겹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오늘의 '보물찾기'는 취나물.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나섰지만 내려올 땐 대나무 소쿠리마다 나물이 넘친다. 직접 뜯어온 나물을 염소에게도 먹이고 직접 먹어도 보면서 아이들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살아있는 교실이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다슬기를 줍는다. 비록 아직은 씨알이 작지만 종이컵마다 가득 담긴 다슬기를 내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엔 자랑이 가득하다. "아빠, 제가 잡은 거예요. 너무너무 많죠?" "그래, 여름에 다시 오자꾸나. 그땐 아빠하고 가재도 잡아볼까?" 물싸움으로 흠뻑 젖은 개구쟁이 녀석들의 어깨를 뜨거운 햇살이 다독인다. 벌써 여름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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