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로축구 통산 406경기 최다출장…포항 스틸러스 김기동

"보따리 쌀때? 아직은 아니죠…500경기 채우고 떠날랍니다"

▲ 라커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는 김기동. 등번호 6번이 붙어 있는 이 옷을 입을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 라커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는 김기동. 등번호 6번이 붙어 있는 이 옷을 입을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약 (안)정환이나 (홍)명보 형이 최다 경기 출장기록을 세웠더라도 언론이 이렇게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정환이나 명보 형이 아닌데….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맘껏 할수 있고 현재도 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프로축구 포항스틸러스의 미드필더 김기동. 그는 지난달 29일 대구와의 홈경기에서 프로축구 통산 필드플레이어 최다인 402경기(종전 전 일화 신태용의 401경기) 출전 신기록을 세운 뒤 13일 제주 전 출전으로 기록을 406경기로 늘리면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생활 17년차로 올해 나이 만 36세. 30대 초반이면 퇴물 취급을 당하며 그라운드를 떠나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는 희수(77세), 미수(88세)를 넘기고 백수(99세)를 바라보는 정도에 비교된다.

더구나 운동량이 가장 많은 미드필더라는 그의 포지션을 감안하면 최다 출장 기록행진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초일류 스타급 선수가 아니기에 기적같은 기록을 세우고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한국축구의 '넘버 3'

"후배들이 저더러 '넘버쓰리'라고 불러요. 현역 선수들을 나이 순으로 줄세우면 (김)병지 형과 (최)진철이 바로 다음이 저거든요. 보따리 싸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데, 아직은 아닙니다. 할 일이 남았습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열되는 선수는 한결같이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주역들. 하지만 그는 기가 죽지 않았다. 위(스타급 선수)만 보고 살면 허탈하고 실망스럽겠지만 자신은 그에 못지않게 열심히 했고 성실하게 선수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데 보람과 긍지를 갖는다고 했다.

마니아를 뺀, 국가대표들이 뛰는 '빅 매치'만 보는 일반 관중들에게 '김기동'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울 만큼 팀 내에서는 확실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는 한 번도 스타반열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1996년과 97년 2차례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A매치 출전은 단 3경기. 그 중 한 번은 홍명보를 대신해 출전했다가 한국이 일본에게 0대2로 지는 바람에 패전의 주역이라는 덤터기를 쓴 경험도 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은 "기동이가 제일 나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팬들은 홍명보가 없어서 졌고, 그 자리를 김기동이 메웠기에 너무 약했다고 과소평가했다. "참 쓰라렸던 때"라고 회상했다.

◆돈도 모았고, 아직도 현역이어서 행복하다

"솔직히 고교를 졸업하고 포항(당시는 포항 아톰즈)에 입단할 때 '1억 원만 모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17년째 계속 뛰고 있고 아직도 뛸 힘이 남았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동기들 중에 아직까지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윤정환(일본 J리거 활동 중)과 저 둘뿐입니다. 그리고 1억 원은 더 넘게 모았으니, 됐지요."

그는 축구를 즐긴다. 초등학교부터 선수생활을 했으니 지겹기도 하련만 공을 차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도 했다.

봄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던 지난 10일 오후 포항 송라면 스틸러스 선수단의 숙소와 연습장이 있는 스틸러스 클럽에서 만났을 때, 마침 포항스틸러스와 부산아이콘스의 2군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그 쪽으로 손짓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전이지만 (후보인)쟤들이 더 부러워요."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에는 정말로 부러움이 가득한 듯했다. "쟤들은 젊잖아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주전으로 올라와 맘껏 경기장을 누빌 수 있지만 전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잖아요." 2군 선수 대부분은 그보다 10세 이상 아래인 조카뻘들이다. 이런 말도 했다.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바로 그라운드입니다. 그러니 쉽게 떠날 수 없죠."

◆"안 될 때 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야죠"

한국 축구사에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도 그는 요즘 풀이 죽어 있다. 지난달 4일 전북과의 경기에 3대 1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포항은 13일까지 12경기 연속 무승(6무6패)이라는 치욕적인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16일 대구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3대 1로 승리, 무승에서 벗어났다.) "(학생축구 포함) 25년 선수생활을 통틀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안 풀리네요."라며 초조한 기색을 지었다.

그래놓고는 이내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이럴 때 제가 역할을 해야죠. 괜히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겠습니까?" 그는 전날 야간경기를 했는데도 이날 일찍 운동장에 나와 몸을 풀었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훈련. 동료들보다 3배는 더 뛰었다. 그러는 틈틈이 후배들에게 "괜찮냐?" "힘내!" "맛있는 거 사줄까"라며 어깨를 다독여주고, 외국인 용병들에게도 "하이" "굿 애프터눈"하며 힘을 북돋아 줬다.

"일반 직장인들도 저희와 비슷할 겁니다. 지독하게 안 풀릴 때가 있겠죠?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포기하든가, 더 열심히 해서 극복하든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겠죠."

"앞으로 최소 2년, 500경기 출장기록은 세우고 떠날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포항·박정출기자 @msnet.co.kr

◇김기동은?

1971년 충남 당진 출생. 신평중·고 졸업. 중학교 때는 선배에게 맞기싫어 잠시 운동을 포기하기도 했다. 가장 후회되는 시기란다. 1991년 포항에 입단했다. 1993년 유공(전 부천SK·현 제주유나이티드)으로 이적했다가 2003년 친정 포항으로 돌아왔다. K리그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26골, 3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번의 퇴장과 560개의 반칙을 했다. 2차례 대표팀에 발탁돼 3경기를 뛰었다. 부인 조현경(32) 씨를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여긴다.

▶키 171cm, 몸무게 69kg으로 프로축구계에선 '땅꼬마'.

▶별명=FM. 부상 위험이 있어서 좋아했던 스키도 그만뒀다. 술·담배는 NO. 잠들 시간엔 반드시 잠자리에 든다.

▶체력유지=정기적인 운동 외 계절마다 보약 1제씩. 아미노산 등 영양제 4가지는 달아놓고 먹는다.

▶숙소=포항 송라면 스틸러스클럽 내 월포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305호. 홍명보 대표팀 코치가 스틸러스를 떠나면서 그에게 넘겨줬다.

▶감독, 코치, 협력병원 의료진 등이 보는 김기동= 해야 될 일은 꼭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안하는 사람.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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