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正立

지난달 말 부산에서는 주목할 일이 하나 일어났다. 어느 친선 축구대회에 출전한 11개 팀이 개회식을 보이콧하면서 대회까지 무산시켜버린 것. 발단은 오래 계속된 來賓(내빈) 소개였다. 국회의원 1명, 구청장 1명, 시의원 2명, 구의원 7명, 구 체육회 임원 18명…. 축구는 간데 없고 '정치'가 판을 치는 구태가 답습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달라져 그런 행태를 더 이상 참아내려 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官邊(관변) 행사 모습이 전국적으로 많이 바뀌는 중이라고 했다.

울산의 한 구청이 최근 새로 기구표를 만들면서 종전의 上下(상하) 구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전에는 으레 구청장 이름이 맨 상석에 자리하고 그 아래로 국장 과장 계장 이름이 배열됐다. 하지만 이번에 맨 상석을 차지한 것은 區民(구민)이었고, 그 다음은 구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동사무소였다. 구 본청 직원들의 이름은 그 밑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으며 구청장 자리는 그 중에서도 맨 아래였다.

올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채용 시험 방식을 바꾸기 위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중시하던 영어 성적은 최소한의 자격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대신 직무능력 검사를 높은 비중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전문적으로 상대할 직종도 아닌데 뭐 하러 영어 성적을 저렇게 중시하는가, 저러다가 저 職列(직렬)에 진짜 필요한 인재는 못 뽑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이제야 가시게 될지 기대된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그 대학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50여 년간 미국서 생활하다 작년 7월 현직을 맡아 돌아와 보니 우리 교육이 지식만 탐구하는 '공부기계'를 양성하는 쪽으로 顚倒(전도)돼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 총장은 인성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육성을 교육의 목표로 잡고 그런 자질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해 그런 인재로 키워가겠다고 했다. 대학만 바로 서면 고교 교육은 저절로 건강해질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특히 반기고 반길 소식일 터이다.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걸었을 때 "역사가 자빠졌더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倒立(도립)돼 있어서 시급히 正立(정립)시켜야 할 일들은 우리 생활 현장에도 숱하다.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 바로 발전이고 진보일 것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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