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권의 책)수선된 아이

여러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동화를 고를 때도 동화집으로 묶여 있는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동화집이 또 반가운 이유는 장편에 비해 호흡이 짧기 때문이다. 줄거리나 문장, 표현도 압축된 편이어서 한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늘 입 안에 사탕을 천천히 녹여 먹는 듯한 여운이 남는다. 동화집의 이런 특징을 고려하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읽어야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 책 '수선된 아이(김기정 등 저/푸른책들 펴냄)'에는 7명의 작가가 공들여 쓴 중·단편동화 7편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작가들의 개성적인 숨결을 느끼며 흥미로운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다. 웹진 '동화 읽는 가족'에서 한 해 동안 우수한 작품들을 골라 선정한 '제1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들이다. 판타지, 가난, 왕따, 홀몸노인의 쓸쓸함, 장애 등 동화로서는 다루기 쉽지 않은 묵직한 주제들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청소년 왕따 문제를 다룬 표제작 '수선된 아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첫 편에 등장하는 '두껍 선생님'. 동화에 좀처럼 접목하기 힘든 해학과 능청스러움이 돋보인다. 사실적인 생활동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판타지를 접목한 한 편의 그림책 같은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두껍 선생님? 선생님 외모가 두꺼비처럼 생겼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예 선생님이 되고 싶은 두꺼비가 주인공이다. 한 초등학교 소녀가 등굣길에서 두꺼비를 만난다. 소녀는 학교 생활이 한참 지루하던 참이다. 두꺼비는 '내가 선생님이 돼주겠다.'며 학교로 따라 나선다. 두꺼비 동료들의 수작으로 그날 아침 선생님들은 한 명도 출근하지 못하게 되고, 교장은 어쩔 수 없이 수상한 두꺼비 선생들을 일일 교사로 받아들인다. 두꺼비 선생이 내민 교사자격증에는 '金두껍, 나는 참말로 선생님이 되고픈디요.'라고 적혀 있다.

두꺼비 선생은 아이들에게 책을 가르치는 대신 비오는 날 늪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똑같게만 느껴지는 빗방울이 그렇게 다양한 표정으로 내려오다니. 두꺼비 선생은 못 미더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요술을 부린다. 삭막하던 교실에는 어느새 연꽃과 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무가 자라고 풀이 솟는다. 넝쿨 냄새가 가득한 싱그러운 늪으로 변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근한 교사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흩어지는 두꺼비들의 대책 없는 뻔뻔함은 더 우습다. 선생님 역할에 재미를 낸 두꺼비들은 '일일 교사 경험 있음'이라고 쓴 명함을 만들고 또 다른 학교를 찾아나선다.

'수선된 아이'는 이미 많은 동화에 나온 따돌림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자아인 '수선된 아이'를 내세워 따돌림당하는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외톨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를 인형괴담을 통해 조금은 충격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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