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와 시저는 전장을 누벼 대제국을 이룩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 또한 크다. 알렉산더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수업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학자들한테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고, 시저는 로도스 섬의 아폴로니우스를 찾아가 웅변을 배웠다.
알렉산더는 정복의 길에 학자와 예술가를 모셨지만, 시저는 군대로 충분했다. 알렉산더는 정복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보장했지만 시저는 많은 피정복자를 노예로 끌고 갔다. 결국 시저는 음모와 선동으로 일시 세상을 지배했지만, 자신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브루투스에게 배반당하여 삶을 마감한다.
두 사람 사이의 근본 차이는 인간관에 있다. 알렉산더에게는 인간이 목적이었던 데 반하여, 시저에게는 인간은 수단이었다. 인간을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치관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 폭파와 그에 대응한 미국의 이라크 폭격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역사 앞에 용서받기 어려운 폭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두 폭력의 본질은 큰 차이가 있다. 쌍둥이 빌딩이 현대문명의 현주소라면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옛주소이다.
쌍둥이 빌딩은 재건되었지만 귀중한 인명은 회복할 수 없고, 이라크의 파괴된 현대 건물이야 복구가 가능하겠지만 사라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은 되돌릴 수가 없다. 전자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세상을 화폐가치로만 따지는데 익숙해 있지만, 후자의 손실은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 두 사건의 배후에서 우리는 공통되게 '휴머니즘'의 실종을 확인한다.
여기서의 휴머니즘이란 인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주체로 보고 인간을 위하여 진정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려는 철학이라고 정의해 두고 싶다.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위하려는 태도이며, 인류가 남긴 유산을 공동의 유산으로 지켜 더욱 풍성한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이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되 따뜻한 인간미로써 해내려는 여유(humor) 같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미덕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고 학습과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것들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훈련은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시인 키츠가 그려놓은 '그리스 항아리'가 다름 아닌 휴머니즘의 상징 즉 인간의 이상적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닐까. 쫓아가는 총각 앞에 달아나는 처녀의 그림은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이상으로서의 휴머니즘이 아닐까. 잡힐 듯 앞서가는 인간주의의 이상을 설정하기 위해, 아름답고 거짓 없는 영원한 이상(Beauty is truth, truth beauty)을 수립하고 실현하기 위해, 인문학은 숨가쁘게 희망을 안고 달려온 것 아니었던가.
오래 전부터 인문학 교수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학자와 교육자 가운데 어느 쪽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느냐?'는 것이다. 사회가 불러주고 대접해주는 '敎授(교수)'라는 직함의 의미 속에는 원래 교육을 훌륭하게 베푸는 사람 즉 교육자이기를 바라는 사회적 주문이 들어있다.
그러나 교수들은 자신을 '학자'로 지칭하는 것을 선호한다. 배우고 탐구한다는 학자로서의 모습은 사실상 교수로서의 활동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일 뿐이다. 탐구하여 얻은 것을 펼쳐서 지도할 때는 이미 학자가 아닌 교육자이고 실천가이기를 사회는 기대한다.
세계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계정복에 나섰던 알렉산더를 위대하게(the Great) 만든 것은, 시저가 그토록 중시했던 현란한 말잔치 기술이 아니라 끝없는 지혜(德·Beauty, Truth) 탐구와 그 실천이었다. 지혜 탐구로서의 인문학은 다른 어떤 현대적 학문보다 진지한 진화가 필요하다.
인문학 영역의 교육자는 스스로가 그것을 추구하고 실천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목전의 실리에만 시선을 맞추려는 세태를 가장 목청껏 질타하는 사람들이 인문사회학자인 듯한데, 그러면서도 스스로 이삭줍기에 집착한 나머지 교단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너무도 황폐해져 있지는 않은지 자신에게 물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문 학도인 우리조차 正義(정의)의 자리에 궤변을 대치하고, 변칙과 비리를 넘나드는 정도를 능력의 크기라고 定意(정의)하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의 몸에서, 특히 인문학 교수들의 몸에서, 상식과 正道(정도)가 실현될 때 세상은 말이 훨씬 줄어들 것 같다. 그때는 이런 글 따위는 공염불이 될 것이고, 대학 강의실에서 그리스 항아리는 더욱 윤기 날 것이고,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기승을 부리는 수많은 시저들은 변하게 될 것이다.
김형태 대구대 영어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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