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시평] 밀라노프로젝트의 재조명

흔히 밀라노프로젝트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대구'경북의 섬유 수출의 감소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고, 둘째, 밀라노와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환경이 판이한데 밀라노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시각이다. 대구와 같은 보수적인 기질에는 섬유패션산업이 합당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셋째, 섬유 관계 단체장과 연구소들이 밀라노프로젝트를 잘 다루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밀라노프로젝트가 성공하였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섬유산업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였다고 생각한다.

첫째, 수출 감소와 이에 따른 생산과 고용의 감소, 그리고 지역의 대형 섬유기업들의 도산은 선진국형 섬유산업으로 진입하는 데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노동집약형의 산업은 선진국에서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대구 섬유산업의 이 과정이 더욱 심각하게 된 것은 1986년부터 시작한 섬유 구조 개선 사업에 그 원인이 있다. 밀라노프로젝트는 이런 섬유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 아니고, 이태리 감성의 고부가가치 섬유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고부가가치 체제로 전환하는 데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밀라노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단선적인 평가이다.

최근 지역의 섬유산업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여야 한다.

둘째, 밀라노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고, 대구 지역이 보수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 왜 밀라노를 벤치마킹하였는지 짐작은 간다. 대구의 섬유산업은 적어도 3천여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산업이다. 대구 주위의 지석묘에서 유독 많이 발굴되는 방추차, 신라 유리왕 33년 베 짜기 시합, 650년 진덕여왕이 당 고종에게 보낸 태평송의 문직, 869년 경문왕이 당 왕에게 보낸 꽃과 물고기, 아침안개를 문직한 비단, 일본에 신라의 양잠과 견직 기술을 전수한 것은 지역 섬유산업의 역사이다. 신라라는 국명도 실에서 유래하였다고 삼국사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실크라는 어원도 우리나라의 실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문익점의 손자 성로와 영이 의성과 선산에서 목면산업을 육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목면산업은 조선시대의 전략산업이다. 대구의 섬유산업은 근대에 발전한 산업이 아니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산업이다. 밀라노와 역사적 문화적 환경이 다른 것은 틀림없으나, 대구인 기질에 섬유산업이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는 신라와 조선시대의 대구 지역 섬유산업을 다시 복원하는 문화 찾기 운동도 하고 섬유산업을 육성하여야 한다. 우리는 섬유산업의 DNA를 가지고 있다. 이 유전인자를 되살려야 한다.

셋째, 밀라노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을 섬유 단체장들에게 돌리는 것은 희생양을 찾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논리가 서지 않는 주장이다. 1차 밀라노프로젝트에 6천800억 원을 지원하였다는 것도 예산일 뿐이고, 실제 섬유산업에 직접 지원한 것은 5년간 1천30억 원이다. 섬유 단체장이 섬유업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리드하는 데 실패한 것은, 1986년의 섬유 구조 개선 사업이다. 그리고 섬유 관계 연구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주장도 합당하지 않다. 밀라노프로젝트에서 성공하였다고 지적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면 연구소의 인프라 구축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1983년, 한국염색기술연구소는 1994년 3섹터 방식으로 민간이 설립한 연구소이다. 이들 연구소가 밀라노프로젝트에 의해 연구소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강화된 것이다. 중소기업의 형태일 수밖에 없는 지역의 섬유기업의 기술 지원에 필수불가결한 조직이다. 일본의 중소기업기술지원연구소는 각 지역에 적합하게 국립연구소 형태로 100여 개가 설립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지원연구소는 걸음마 단계에 있다. 일본의 국립연구소보다 3섹터 방식의 우리나라 연구소는 국가 예산 절감의 효과가 크다.

우리는 지역의 섬유산업을 육성하는 지혜를 모아야 하고, 대구의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밀라노프로젝트를 재조명하여야 한다.

정기숙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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