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예술의 공공성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생각해도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는 습관이 부족하다. 자기 일에는 죽으라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을 생각한다면 실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공공의 이익을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예술 활동에 세금을 투입하는 행정지원에 관해서도 이제는 공공이익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실을 기할 수 없다. 예술가에게 지원금을 배정하고 또 예술진흥에 세금을 사용하는 일은 일부 예술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주민과 커뮤니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공공성(publicity)이다.

근래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내에 여러 문화시설을 지었고 또 현재 짓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별반 뚜렷한 프로그램도 마련하지 못하고 주민의 참여도 없어 썰렁하다. 문화시설 그 자체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도로에도 유지비가 드는 것처럼, 문화시설에도 프로그램 운영에 비용이 들고 또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때 존재가치를 발휘한다.

건설 후의 사업비를 확보하지 않는 미술관, 관객이 없는 미술관은 연료 없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 돌이켜 보면 많은 미술관과 공연장이 주민들이 정말로 원하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단적으로 말해 자치단체장이 만들고 행정관리가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득이 될 것은 없다. 주민의 문화 환경을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해 짓고 활용하는 면도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믿고 싶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지만, 그만큼 문화예술이 진흥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건물은 지었지만 그것이 활용되고 있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소장품과 전시할 작품이 있고나서 그것을 수용할 시설로 이뤄지는 것이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우선 건물이 있어야지, 먼저 짓고 보자'라는 식으로 시작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문화시설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건립하는가, 예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그간 많은 일들이 추진되었다. 지금이라도 이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후대처라는 수준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고, 문화시설이 올바르게 활용되지는 못할 것이다. 일을 그르친 뒤에야 수습에 나서는 식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언제까지나 되풀이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민주식(영남대 조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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