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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아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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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과 함께 학부모들을 만나면 "방학 동안 허리가 더 휘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집중특강이다, 단기완성이다, 필수선행이다 갖가지 용어를 붙여서 안내문을 보내는 학원 등쌀에 못 이겨 사교육비가 평월의 두 배를 훌쩍 넘기 때문이란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종일 애들 학원 태워주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못 했다."고 푸념을 붙이고, 아버지들은 또 "뼈 빠지게 벌어서 애들 밑에 다 들어간다."며 못마땅해한다.

자녀들 공부 뒷바라지가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되어버린 우리 현실에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규정하는 습관이 든다.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고 접대를 하는 것도 아이들을 위해서이고, 학교 급식·청소·교통 도우미로 땀을 흘리고 학반 어머니 모임에 가고 학원 설명회에 다니는 것도 아이들을 위해서다.

그렇게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느 날 저녁 한국 가정의 풍경을 그려보자. 그리 어렵지 않다. 회사 일에 귀가하지 않고 있는 아버지, 큰 아이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급하게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 학원 갔다 와서 혼자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앉은 둘째. 가족이 한자리에 앉은 게 언제인지도 감감한 이 같은 날들이 몇 년은 지나야 겨우 끝이 보인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그려지고 있는 이런 삭막한 풍경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얼마 전 한 글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저녁 식사를 가족 단위로 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조사 자료를 본 일이 있다. 미국 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가 학생들의 학업 성적 향상과 비행 감소에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된다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굳이 말을 덧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프로 골퍼 어니 엘스는 최근 한 골프 대회에 불참했다. 아이들의 개학 준비를 도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무려 1천만 달러가 걸린 골프 선수권의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회였는데도 말이다. 자식 사랑이 극진한 그는 3년 전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총상금 700만 달러의 대회에도 불참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내 가족의 일보다 소중한 대회는 없다."고 말하는 그의 가족관이 우리 정서에서야 기가 막힐 테지만 서구에서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 당장 자녀를 위해 무언가 대단한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저 일주일에 한두 번 저녁 식사 정도는 함께 한다는 결심이면 충분하다. 단,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모두를 위해서라야 한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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