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검사 한 번 해 보시죠"

말단 비대증은 뇌종양으로 인해 성장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돼 성장기에는 거인처럼 키와 골격이 매우 커지고, 성장기가 끝나면 주로 손발이 굵어지고 얼굴 모양이 변하는 희귀한 내분비계통의 질환이다.

최근 한 유명 격투기 선수가 이 질환으로 인해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돼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대회 참가가 거부되면 결국 더 이상의 선수 생활이 힘들게 되고, 한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의 상실뿐 아니라 시합을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던 이들의 경제적 손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병을 치료한 뒤 시합에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말단 비대증을 치료하면 결국 성장 호르몬의 분비 감소로 근력이 약화돼 선수로서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므로 대부분은 질병을 숨기고 치료를 미루게 되는 것 같다. 말단 비대증을 치료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게 되면 결국 심각한 합병증으로 치명적인 건강상의 문제가 유발되고 장기적으로는 한 선수의 수명을 오히려 단축시키는 결과를 부른다.

10년 전쯤인가, 응급실에 한 환자를 보러 갔다가 다른 환자 보호자로 오신 말단 비대증이 의심되는 한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혹시 놀라거나 황당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질병을 미리 확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조용히 밖으로 나오시라고 해서 "아무래도 뇌종양이 의심되니 시간 날 때 꼭 한번 검사를 받아보세요."라고 당부했다. 그 뒤 그분은 결국 말단 비대증으로 진단돼 수술을 받게 됐다. 그리고 수술 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며 병을 일찍 찾을 수 있도록 해 줘 정말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그 뒤에도, 집 앞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사러 온 한 아저씨에게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보는 분을 붙잡고도 "말단 비대증 검사 한번 해 보시죠."라는 말을 몇 번 더 했던 것 같다.

내분비내과 중에서도 특히 갑상선을 주로 진료하는 의사인 나는 진료시간 외에도 항상 다른 사람의 목부터 먼저 보는 게 이제 습관이 돼 버렸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남한테 싫은 말이나 참견을 잘 못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목에 이상이 있는 분을 보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검사해 보라고 권하는 내 모습을 보면, 새삼 내재된 직업의식을 느끼게 된다. 의사로서 이 정도 참견은 유익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의사가 돈벌이하려고 그런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윤현대(라파엘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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