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마스크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청혼을 하자 갑자기 불안감에 빠진 20대 여성이 진료실을 찾았다. 자신은 남 보기엔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여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신박약인 부모와 번듯하게 사는 형제자매 하나 없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가장 노릇을 하며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세련된 외모에 직장에서 인정받는 '알파 걸'(엘리트 집단 여성을 말함) 행세를 하지만, 초라한 가정형편을 알게 되면, 결국 버림받을 것이라는 거다. 이 여성은 보이는 모습과 참된 자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일시적인 해리현상을 겪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꾸미며 살아간다. 맨 얼굴로 외출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교복을 벗고 과감하게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나, 예비군복을 입고 노상방뇨를 하는 남자도 알고 보면 점잖은 신사다. 이처럼 의복이나 역할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페르조나'(persona)라고 한다. 이것은 고대 희랍의 배우들이 연극을 할 때 쓰던 가면을 이르는 말로, 자아와 외부 세계가 관계를 맺는 기능을 하는 사회적 얼굴을 말한다.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과 상관없이 '남자답다' '배운 사람답다' '착한 며느리답다' 등 남이 평가하는 행동기준과 사회적 도리에 따라 하는 행동이므로 일종의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체면이나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누구나 페르조나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마스크'는 천의 얼굴을 가진 짐 캐리의 안면근육 연기가 두드러진 영화로, 마스크를 쓰고 벗을 때마다 달라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페르조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평소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항상 손해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던 스탠리(짐 캐리)는 우연히 발견한 녹색가면을 쓰는 순간 대담하고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인 성격으로 돌변한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행동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과감하게 다가가고, 무시당하는 건 절대로 참지 않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너무 본능적으로 행동하면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사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페르조나에만 집착하면 참 자아는 사라지고 인간관계는 겉돌고 결국 공허감만 남게 될 것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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