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농촌체험] ⑮군위 소보 우무실마을

"물장군·게아재비… 아직 남아 있었네!"

▲ (사진 위)지난 8일 군위 소보면 도산1리 우무실마을에서 진행된 농촌체험 행사에서 고추따기를 하고 있다. (사진 아래)어린이들이 땅콩을 직접 수확해보고 있다.
▲ (사진 위)지난 8일 군위 소보면 도산1리 우무실마을에서 진행된 농촌체험 행사에서 고추따기를 하고 있다. (사진 아래)어린이들이 땅콩을 직접 수확해보고 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여름 장마보다 더 지독했던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이삭이 패기 시작한 들녘은 아직 황금빛을 자랑하진 않지만 풍년을 기대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도시민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넘친다.

정성스레 마련한 환영 플래카드까지 내건 마을에는 벌써 어르신들이 모두 나와 낯선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마쳐놓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마을은 이름 그대로 걱정 근심 없는 마을, 우무실입니다. 도시에서 가져온 스트레스는 모두 털어버리고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봅시다." 따뜻한 악수를 건네는 김교묵(50) 마을 대표의 환한 웃음이 정겹다.

마을회관 앞에 자리 잡은 농기구전시관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박물관이다. 새 잡는 틀, 소 등 긁어주는 등긁개, 메주틀, 흑백TV까지 모두 처음 보는 물건뿐이다. 코흘리개들의 눈빛은 디딜방아를 찧어보고 탈곡기도 돌려보면서 더욱 반짝인다. "엄마도 예전에 이런 거 써본 적 있어요?" "그럼, 엄마도 참 오랜만에 보네. 버리지 않고 모아두신 정성이 참 대단하구나."

트럭을 타고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으러 나선다. 덜컹거리는 시골길에 엉덩이는 비명을 질러대지만 마음만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땅콩밭, 고구마밭에서는 수확의 기쁨을 누려보고 농기구창고에서는 농촌의 현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듯하다.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아래에선 동아줄 그네 뛰기가 이어지고 이도령과 춘향이가 따로 없다.

온갖 나물들로 차려낸 저녁식사를 후다닥 해치우고 소 코뚜레 만들기에 도전한다. 일부러 산에 가서 준비해둔 모감주나무 가지를 요령껏 휜 다음에 끈을 매어주면 그만이지만 농촌에 익숙지 않은 손길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할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코뚜레 다 만들면 소 코에 꿰볼 수 있어요?"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소를 이용한 농사를 거의 짓지 않는단다. 하지만 예전에는 꼭 필요했던 물건이야."

농촌의 아침은 바쁘다. 해가 중천에 오기 전에 일과를 해놓아야 한다. 골목마다 아이들 목소리가 시끌벅적하다. 과수원에도 가보고 채소밭도 둘러보고 외양간 송아지에게도 아침인사를 건넨다.

저마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모인 체험객들은 고추밭으로 향한다. 파란 잎새 사이에 숨어있는 빨간 고추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올해 작황은 괜찮은데 일손이 달려 아직 하나도 못 땄습니다. 오늘 많이 도와주고 가세요."

사람 좋아보이는 고추밭 주인 어르신은 고작 한 포대씩만 땄는데도 새참이라며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내온다. 되레 미안할 따름이다. 밭만 망쳐놓았는데….

고추밭 옆 계곡은 며칠 비 온 뒤라 그리 투명하진 않았지만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다슬기 줍던 체험객들이 환경부가 멸종위기 2급 보호종으로 지정해둔 물장군과 게아재비를 잡아 자랑에 바쁘다. "세상에나! 아직 이런 곤충이 남아 있었나요? 요즘 정말 보기 드물어졌는데."

마을을 떠나기 전 마을에서는 허수아비 만들 준비가 한창이다. 각목을 덧대 만든 틀 위에 저마다 준비해온 옷가지와 수건, 장갑 등으로 한껏 멋을 낸다. 경찰관 허수아비, 소복귀신 허수아비, 등산객 허수아비, 색동저고리 허수아비….

"허수아비들만 세워두고 돌아가려니 너무 아쉽습니다. 시간 나면 꼭 다시 들를게요." "저희 우무실을 잊지말고 또 찾아주세요. 이제 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언제나 환영합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버스 안은 벌써 풍년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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