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정책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의사나 약사단체들이 보건의료정책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해 궐기대회를 열거나 심지어 휴진(파업)까지 해왔다. 약국에서 한약 취급을 둘러싼 '韓·藥(한·약)분쟁' 때, 의약분업 사태 때에도 그랬다. 이들 단체들은 혹시 시민들이 '충정'을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싶어 성명서, 결의문 등에 쓸 단어 하나까지 신경 써 왔다. 그런데 이들 단체들은 똑 같은 목표(국민건강)를 지향하면서도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다. 같은 내용에 대한 서로의 해석과 주장이 달라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더욱이 의료분야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가 없으면 일반인들은 이해조차 힘들다.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마저 갈등이 생길 게 불 보듯 뻔한 정책을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하는가 하면, 그들의 주장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병원이나 약국 문을 닫는 일이 생기면 불신과 비난을 한다. 이런 일이 잦으면 국민들은 '그들의 갈등'을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 의약계에선 의약품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이 핫이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현재처럼 상품 이름 대신 성분의 이름을 쓰도록 하는 것. 이렇게 되면 약사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동일한 성분의 여러 가지 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이레놀'이란 약이 있는데 그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현재는 의사가 '타이레놀'을 처방할 수 있지만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아세트아미노펜'이란 성분명으로 처방해야 한다. 성분명 처방은 의약분업 파동 당시부터 약사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의사가 선호하는 비싼 '오리지널 약'보다 값싼 '제네릭 약'(일명 카피 약)을 많이 쓰도록 유도하려고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시행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 약의 효과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된 성분은 같지만, 다른 성분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최종적으로 쓸 약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8월 31일 병원 문을 닫았다.

시민단체가 제기한 '일반약(의사의 처방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약) 슈퍼판매'도 '뜨거운 감자'다. 의사단체는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저지를 위한 '카드'로 쓰기 위해 이를 활용할 태세다. 일반약 슈퍼 판매는 국민들이 약을 구하는데 따르는 불편(심야와 휴일)을 덜기 위해 오·남용 문제가 적은 일반약을 슈퍼마켓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당연히 약사단체가 발끈하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약이 판매될 경우 약물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느 목소리가 진정 국민건강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국민들은 판단하기 어렵다. 각각의 주장에 진정성이 있겠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갈등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선 안 된다. 더욱이 어느 특정단체의 주장에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며, 많은 정보를 공개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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