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 축제 현장#2-임형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

"30여 년 동안 춤을 춰 왔지만 공연 때마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임형규(55)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 춤판에 뛰어든 지 올해로 34년이 됐지만 공연할 때면 늘 느낌이 새롭다고 했다. 이제 임 회장에게 젊은 날 취미쯤으로 여겨졌던 탈놀이가 탈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변모해 어느덧 그의 업이 되어 있었다.

임 회장은 800년을 이어오다 1928년 끊겼던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복원하기 위해 젊은이들과 1973년 '안동하회가면연구회'를 만들었다. 국악연구소에서 풍물을 익히고 양반, 초랭이, 중, 부네 등의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갈고 닦았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복원되고 전승될 수는 없었다. 워낙 자료가 부족했거니와 주변의 도움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 1928년 마지막으로 탈놀이가 놀아졌을 당시의 참여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1978년 갖은 노력 끝에 각시 역할을 맡았던 이창희(1996년 작고) 옹을 만날 수 있었다. 연구회는 이옹을 만나면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복원과 계승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해 도 대표로 춘천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다. 상을 받자 연구회를 쳐다보는 단체와 시민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침내 중요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고생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

임 회장은 생애 그때만큼 기뻤던 때는 없었다고 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입문한 지 7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였기도 했지만 그동안 어려움과 서러움을 모두 갚아준 값진 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탈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연구회는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보존회로 새롭게 거듭났다.임 회장은 지금껏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춤 세계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탈놀이가 가진 신명과 회원들과의 의기투합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민속예술의 계승자로 국가에서 인정한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임 회장은 고 이창희와 이상호(63) 씨에 이어 2000년 김춘택(59) 씨와 함께 하회별신굿탈놀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기쁘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웠습니다. 더욱더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탈놀이에서 상쇠와 양반 역을 맡았던 임 회장은 1997년 보존회장을 맡으면서 기획과 사업적인 면에 열정을 쏟고 있다. 97년 탈놀이를 상설 공연화 하는 한편 대중화 작업을 함께 했다. 특히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하회마을에서 열리는 상설 공연은 수만 명의 안동시민과 관광객들로부터 지속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하회탈놀이는 지배계층인 양반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와 당시 불교의 타락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주를 이룹니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요즘 서민의 저항적인 정서와 부합하는 면이 많거든요. "

임 회장은 하회탈놀이의 보다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식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오는 28일 안동국제탈품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 내내 감상할 수 있다.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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