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사무사 전전긍긍(思無邪 戰戰兢兢)

세상사라는 것이 알쏭달쏭한 것투성이지만 사람의 혀끝에서 나오는 말처럼 모호한 것도 찾기가 쉽지 않다. 말이라는 것이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혹은 당시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서, 또 어투나 표정 등등에 따라서 완전히 정반대의 뜻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그 말속에 추상적인 낱말이 들어가면 더욱 그러하다. 소위 '상식'이라고 하면 똑 부러지는 잣대는 없어도 관습이나 관념상 '이러저러하다'고 사회적으로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이거나, 대체로(누구나가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만 요모조모를 따져보면 실체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개인과 집단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다르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상식이란 것은 개인의 생각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그건 니 생각' 혹은 '그건 니 말'이라는 한 마디면 추상적인 낱말의 절대성은 까맣게 묻히고 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또한 '양심'이라든지, '도덕', '자유'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 가운데 몇 안 되는 훌륭한 낱말들도 실체가 없는 모호함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실체가 뚜렷한 낱말조차도 모호하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 그 뜻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 것은 바로 국민, 시민이라는 낱말이다. 국어사전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국민), '그 시에 사는 사람'(시민)이라고 돼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나 시·구의원 뿐 아니라 넓은 의미로 선거로 뽑는 공직자를 포함한 정치인 등이 쓰는 이 낱말은 사전적인 의미와는 전혀 다른, 생소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 낱말이 나타나면 그 것을 쓰는 사람들의 행태를 눈여겨보고 어림 짐작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어떨 때 이 낱말이 쓰이는 지를 살펴보니 대선후보의 경우 당내 경선에서 지거나 불리할 때, 국회의원의 경우 범죄 혐의를 받거나 감옥에 있을 때 아주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때는 잘못을 덮기 위해 적반하장격으로 큰소리를 치거나, 융숭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나를 무시하는 것은 나를 뽑아준 국민이나 시민을 무시하는 짓'이라고 떠들 때 자주 사용됐다. 더 나아가 범죄혐의가 드러나기만 하면 이들은 판에 박힌 듯 '국민, 시민에게 죄송하다.'고 까지 한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개인이 무엇때문에 거창하게 국민이나 시민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때때로 이 말은 국민, 시민은 실체가 없으니 사실은 누구에게도 죄송하지 않다는 투 같기까지 하다. 사실 이들 사용법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구태여 묶어본다면 이들이 사용하는 국민 또는 시민이란 뜻은 '평소에는 무시하면 되고, 필요할 때 들먹이면 언제나 약발이 잘받는 아주 좋은 낱말' 정도로 이해가 된다.

반면 정작 당사자인 국민이나 시민들은 이들이 쓰는 이 낱말의 뜻이 그렇게 기분나쁠 수가 없다. 비록 우리도 그들을 '선거때나 굽신거리고 다른 때는 늘 잘 모셔야하는 우리의 높으신 종(공복, 公僕)'이라고 비아냥거리긴뭔가 손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국민, 시민된 입장에서 고전인 시경(詩經)을 들먹여 한 마디해본다면 '사무사(思無邪) 전전긍긍(戰戰兢兢)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노송(魯頌)편 경(목장 경)에 나오는 전자는 '마음이나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으로 삿된 마음이 없는 노 희공(魯僖公)을 찬양하는 것이다. 또 후자는 소아(小雅)편 소민(小旻)에 나오는 것으로 요즘은 전이돼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원 뜻은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며 두려워하는 것'으로 관리의 학정(虐政)을 경고하는 메시지다. 관리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책임질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모든 일에 '사무사 전전긍긍'해야함이 마땅하고, 그 주인인 국민이나 시민의 이름을 삿되게 부르면 안될 것으로 본다.

또한 주인도 앞으로 수많은 선거에서 스스로의 이름이 헛되게 불려지지 않도록 같이 '사무사 전전긍긍'했으면 한다.

정지화 사회1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