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때문에 공연히 마음이 위축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이것이 표준어다. 그 바람에 사투리를 쓰면 교양 없는 '촌사람'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방언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이 우리나라 표준어 정책에 '반기'(?)를 들고 방언의 소중함을 담은 '방언의 미학'(살림 펴냄)을 펴냈다. "표준어 정책이 1933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됐습니다. 식민지배자들이 방언을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가치를 폄훼한 것이죠."
그는 "우리의 표준어 정책이 서방 유럽이 식민정책을 쓰면서 역사와 문학적 지식을 가진 원주민어를 절멸시킨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편의에 의해 인위적이고 강제적으로 탄생한 표준어가 아름다운 다른 방언을 '열등한 존재'로 밀어낸 것을 그는 '포식자의 횡포'라고 표현했다.
"그 바람에 소금꽃(소금을 빚을 때 비치는 반짝이는 현상)과 같은 아름다운 말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구상에 표준어를 지닌 국가는 대한민국과 북한(문화어) 정도. 미국에도 표준어 규정이 없고, 일본과 중국에도 표준어가 없다. 최근 유네스코도 21세기 문화의 다원성을 존중해 원주민어를 보존하자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일상의 지역 말씨 속에는 사람들의 꿈과 욕망, 의식과 철학,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방언은 일상생활, 문화와 전통을 담고 있는 중요한 언어 유산인 것이죠."
책은 문학에 나타난 방언의 아름다움도 소개하고 있다. "심미적 충격이나 운율적 효과를 부여하고, 등장인물의 개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방언을 사용한 예는 많이 있습니다." 백석의 '가즈랑집', 김소월의 '산',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 박목월의 '사투리' 등의 시와 김유정, 박경리, 채만식, 조정래 소설에 나오는 생생한 방언과 그 속에 배어 있는 토속적인 가락과 장단, 말투, 억양, 특유의 심상과 느낌은 작품의 풍부한 어감을 살리고 더욱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가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공통어'이다. "남한은 표준어, 북한은 문화어로 나뉘어 갈수록 이질화되고 있는 남북의 언어 현실을 생각할 때, 남북 언어 규범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은 통일 시대를 대비하여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표준어라는 기준에서 한걸음 나아가 '한민족 간에 두루 소통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라는 개념, 즉 '공통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004년 6·15 민족공동선언 이후 진행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남북 어문 교류사업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장이 마치 '표준어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은 거창한 학문적 담론이 아닌 담담한 일상의 느낌을 담아낸 목소리이며 국어학자로서 자기반성적 고백"이라고 말했다.
"방언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언어 규범을 멸시하는 행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며 "표준국어대사전이 한 국가의 말글살이를 종합하는 언어 창고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를 보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지난 한글날을 앞두고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라는 63쪽짜리 책자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놈현스럽다'(노무현스럽다)는 용어가 실렸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국립국어원에 전화하는 바람에 '외압' 시비가 일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청와대의 강압은 없었다."며 "언론이 지나치게 집중보도하는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고 했다.
경북대 인문대학 교수를 휴직 중인 이 원장은 '국어방언학'(2003),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2005), '언어 지도의 미래'(2006) 등을 펴내는 등 방언과 언어 지도 제작 연구를 선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생태주의 언어학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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