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버럭 화부터 냈다. 무슨 병원이 환자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이 병원에 가라, 저 병원에 가라 한다고 말이다. 다리가 아프다는 70대 할머니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통증의학과 등을 두루 거치며 치료까지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어 마침내 대학병원 혈관외과를 찾았다.
◆다리가 아프면 디스크나 관절염?
다리가 아프다면 디스크(추간판 탈출증)나 관절염을 주로 의심한다. 특히 노인들이 이런 증상을 호소하면 당신 몸의 기계가 낡아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증상 치료를 권한다. 사실 노인의 척추를 방사선으로 촬영하면 조금씩은 디스크에 변화가 있고 척추강의 협착이나 신경 압박이 보인다. 또 무릎이나 엉덩이 관절은 장기간 사용으로 인해 관절면이 손상돼 있고 관절액이 말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뼈가 삐져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환자의 통증은 이것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병과 함께 꼭 감별해야 할 병이 있다. 또 일부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병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다리에는 신경이나 뼈, 관절 외에도 혈관과 근육이 있어서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다리 통증의 원인은 뼈와 신경만이 아니라 혈관과 근육에도 있을 수 있다.
◆혈관질환도 다리 통증의 원인
다리의 동맥협착이나 폐쇄로 인한 통증은 다리의 근육운동에 따른 산소공급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의학적으로는 '파행'(跛行)이라고 한다. 걸을 때 다리가 불편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용어다. 신체의 조직 및 장기에 대한 산소공급은 심장에서 공급되는 동맥혈을 통해서 이뤄진다. 이 동맥을 흐르는 피가 동맥경화나 동맥을 압박하는 병으로 인해 협착이나 폐쇄를 일으키면 심각한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이 모두 혈액공급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리의 동맥에 발생했을 때는 가벼운 경우 다리를 절뚝거릴 수 있으나(파행), 심하면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하지경색이 된다. 이 파행은 대부분 일정한 운동을 했을 때 또는 일정한 거리를 걸었을 때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만일 운동을 멈출 때는 1, 2분 안에 통증이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동맥폐쇄에 의한 다리 통증 가운데 장딴지에 통증이 심하게 오는 경우는 대체로 허벅지 동맥이 폐쇄된 경우가 많다. 장딴지 통증은 운동선수들에게 잘 나타난다. 과격한 운동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다리에 동맥혈액 양이 증가하는데 이렇게 늘어난 혈액 양을 정맥이 배출해 주지 못해서 발생한다. 즉 쥐가 나는 것이다. 경기장에 쓰러진 운동선수의 발목을 뒤로 젖히고 눌러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걸어다닐 때 다리에서 통증이 반복해 일어나면 우선 다리 사이에서 대퇴동맥의 맥박을 확인해보라. 맥박이 강하게 느껴지면 최소한 혈관폐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를 먼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의심스러울 경우는 혈관외과에서 간단한 검사로 혈관의 폐쇄 여부를 가려줄 수 있다.
정맥성 파행도 있다. 이것은 다리에서 심장으로 피를 보내주는 허벅지 및 골반 내 굵은 정맥이 핏덩어리로 굳어서 효과적으로 정맥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쉬고 있을 때는 그나마 일부 작은 정맥을 통해 피를 심장 쪽으로 운반해 주다가도 운동을 하거나 걸으면 늘어나는 혈액 양을 감당하지 못해 다리가 단단해지면서 터질 듯하다. 이런 환자는 운동을 멈추고 쉬면 점차 통증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동맥 폐쇄 때처럼 빠른 시간에 회복되지는 않는다.
◆의사들, 전문 과목에 익숙한 대로 해석
혈관을 담당하는 혈관외과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보다 훨씬 늦게 전문화됐다. 최근 초음파와 CT 등 영상진단기기의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빠른 속도로 많은 혈관 영상 정보를 정확히 얻을 수 있어서 외과의 새로운 전문영역이 됐다. 특히 국내 인구의 고령화와 식생활의 서구화 등으로 심장질환이 느는 것과 함께 신체 모든 혈관의 병도 함께 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처럼 전문 과목의 세분화는 전문분야 질병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향상되었으나 병을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접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의사들이 병을 진단할 때도 자신의 전문과목 안에서 형성된 선입관에 따라 진단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의 증상을 잘 들어보면 그 정도나 양상이 천차만별이다. 통증 부위도 각기 다르고, 통증의 지속시간, 나타나는 시기, 휴식 때 통증의 소실여부 등이 환자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전문의들은 이 증상을 자신의 전문 과목에 익숙한 대로 해석을 한다. 즉 한 가지 병을 두고 정형외과를 방문한 환자는 골관절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신경외과에서는 추간판 탈출증으로 수술하기도 한다. 이런 환자 중에서 일부는 하지 동맥의 폐쇄로 인한 통증이 원인임이 밝혀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의학의 세부전문화가 만들어낸 해프닝이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의 일부는 서로 다른 병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도움말·조원현 계명대 동산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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