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세 브랜드 디자이너 '후즈 넥스트' 패션전 참가

대구 패션을 프랑스에…우리는 파리로 간다

프랑스 파리에는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와 함께 패션 전문 전시회 '후즈 넥스트 2008(Who's Next 2008)'이 매년 열린다. 1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유럽의 대표적인 기성복 의류 전시회인 '후즈 넥스트 2008'에 대구지역 브랜드 3개가 처음으로 참가한다.

이번 전시는 후즈넥스트 측의 사전 심사를 통한 것으로, 부스비·숙박비 등 경비 일체를 지원받게 된다. 5만 명 이상의 바이어가 모이는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는 박준영(JUNE+YOUNG), 박민규·기명진(BURN), 박영화(박영화).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처럼 지역 패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앞으로 대구 패션계를 이끌어가게 될 차세대 디자이너들을 만나봤다.

미국 태권도 사범을 꿈꾸던 한 태권도 전공 청년이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디자인의 문외한이었던 그들은 브랜드 출시 2년 만에 프랑스 후즈넥스트 전시에 참가하게 됐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박민규(29) 씨는 계명대 태권도학과 졸업 후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쿼시·레프팅 강사이기도 했던 그가 스노보드를 만나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 길로 태권도의 길을 포기하고 스노보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하면서 해외원정까지 다녀오는 등 프로선수 등록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한쪽 팔을 심하게 다치면서 스노보더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다.

"절망했죠. 그래도 마냥 넋놓고 있을 수 없어 평소 관심이 많던 스노보드 웨어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는 태권도 관장 출신 친구 기명진(29) 씨와 함께 손을 잡고 자본금 600만 원으로 스노보드 웨어 브랜드 번(BURN)을 런칭했다. 하지만 체육학과 출신인 이들에게 디자인이란 생소한 분야였다.

"처음엔 사무실은 커녕 포토숍조차 몰라 피시방을 전전하며 연구했어요. 대구에서 생산을 맡아줄 공장 찾기도 힘들었고요." 기 씨는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주변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 특유의 뚝심과 오기가 생겼다.

사실 스노보드는 스포츠인 동시에 스타일이며 문화다. 스노보드가 다른 레포츠에 비해 급격한 속도로 전파된 데에는 스타일이 한몫 했다고. 그 정도로 스노보드 웨어 분야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스노보드에는 반항적 프리스타일이 녹아 있어, 클럽문화·스트리트 문화와도 통한다.

때문에 스노보드 웨어는 매년 새로운 디자인이 출시되고, 마니아들은 매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박 씨는 그 틈새시장을 노렸다. 국내 스노보더는 지난해 기준 6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8월 번 주최로 100명 이상이 참가한 '번 레일 잼 인 타이거월드'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올해는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번'의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으며 마스크의 일종인 반다나(Bandana)에 기능성과 패션을 입혀 국내 최고가 됐다고 자부한다. '번'의 디자인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빛난다. 보드를 타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히든 포켓을 만들고 고글에 습기가 덜 차도록 반다나에 통기 구멍을 뚫었다.

"그냥 즐기는 거예요. 기발한 아이디어를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만들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거니까요." 박 씨에겐 뜻하지 않은 부상이 또다른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최근엔 카메라를 들고 선수들의 기술과 스노보드에 대한 DVD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판매 목적이 아니라 무료로 다운받아 공유하기 위해서다. "대기업, 해외 브랜드 등 기존 업체와 차별성을 가진 스노보드 웨어로 우뚝 설 겁니다. 보더들이 설원 위에 '번'을 입고 종횡무진할 그 날을 기대하면서요."

최근 패션업체의 디자인실장이 젊어지고 있다. 브랜드의 디자인을 좌우하는 디자이너 실장은 3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20대 실장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도현&바부도쿄의 디자인 실장 박영화(27) 씨 역시 마찬가지. 이는 젊은 감각을 요구하는 패션시장의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박 씨는 이번 파리 후즈넥스트 전시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출품한다. "이름을 건 브랜드 런칭은 모든 디자이너의 꿈이예요. 지금 하는 것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일을 벌였습니다."

박 씨의 이번 파리 후즈넥스트 전시 참가는 박 씨가 몸담고 있는 도현&바부도쿄의 도움 하에 진행됐다. 회사에 몸담고 있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에 참가하는 것은 좀처럼 힘든 일일 터. 이번 전시 반응에 따라 도현&바부도쿄에는 20대를 겨냥한 세컨드 브랜드가 생길지도 모른다.

박 씨의 패션계 경력은 8년. 나이에 비해 현장경험이 풍부하다. 박 씨는 '졸업장보다 현장'을 택한 실속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힘든 시절을 견뎌올 수 있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중도 하차했어요. 서울로 간 친구들도 오래 버티지 못했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상상 외의 고된 생활을 거쳐야 하니까요."

박 씨는 디자이너 지망생이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드라마 등에 비친 디자이너는 더없이 화려한 직업이지만 실은 퇴근시간도 일정치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다. 박 씨 역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여가시간이 많지 않아 우울할 때도 있지만 '한번 시작한 일, 끝까지 해보자'며 힘을 낸단다.

박 씨는 틈날 때 마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스케치해왔다. 이번 전시는 오랜 준비의 결실이다. "과연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잘한 일인가, 하는 회의도 때때로 찾아와요. 그럴 땐 좋은 디자인을 내놓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초심을 기억해요. 이번 전시에서도 꼭 좋은 성과를 낼 겁니다."

대구·경북엔 매년 수많은 패션 디자인학과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들 대부분이 서울로 떠나는 분위기를 거슬러 다시 돌아온 이가 있다.

박준영(32) 씨는 서울과 미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후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브랜드 '준 플러스 영(JUNE+YOUNG)'을 들고서 말이다. 2006년 살롱쇼를 통해 브랜드를 선보인 그는 지역에선 보기힘든 캐주얼을 들고 나와 지역 패션시장에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모두 서울을 꿈꾸는 요즘, 그녀는 왜 대구로 왔을까. "이젠 더 이상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지역에서 바로 해외로 수출 가능한 여건이 갖춰졌으니까요. 게다가 대구는 오히려 서울보다 패션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요. 기술력 있는 봉제, 다양한 원단시장, 서울과 연계성 등이 뛰어나죠."

박 씨는 소비자들의 변화를 감지했다. 더 이상 디자이너의 학교, 지역 출신이란 이유로 옷을 구매하진 않는다. 단지 옷 자체 퀄리티에 관심이 있다. 그러면서도 남달라야 한다. 독특한 개성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박 씨의 디자인은 기존 브랜드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편안한 면 재질의 다이마루 캐주얼에다 비틀즈 초판 앨범, 1920년대 선풍기 등 재미있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그래픽을 가미해 유머러스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부띠끄 라인은 입체디자인으로, 동양적이면서 드러내지 않는 섹시함을 강조한다. "디자인 스케치부터 패턴·봉제·가봉까지 스스로 하기 때문에 '나만의 라인'이 옷에서 드러나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박 씨는 매장 대신 쇼룸을 2월 중 오픈할 계획이다. 쇼룸은 상품의 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한편에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공개, 소비자와 디자이너와의 적극적인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다. 패션에 대한 거품을 벗겨내는 것이기도 하다.

"기성세대는 결과물을 중시했지만 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화려한 디자이너의 겉모습이 아닌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홈페이지(www.parkjunyoung.com)도 운영할 생각이다.

"예순이 넘어서도 현장에서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저는 대구만을 타깃으로 하진 않습니다. 해외 시장에도 통할 수 있도록 늘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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