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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참사 5주년 "아들아, 희망을 품고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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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에 잠든 큰아들에게

원찬(故 손원찬·당시 22세)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네 이름을 불러본다.

벌써 5년이 지났건만 너는 우리 가슴 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다. 널 깨워서 되뇌고, 꼬집어서 기억을 들추는 것이 일상이 됐다. 2003년 2월 18일, 그 암울하고 참담했던 중앙로역 지하철 화재가 어제 일처럼 손에 잡힐 듯하다. 넌 그 이른 아침, 책 한 권을 사겠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손을 내밀면 널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구나.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단다. 포항에서 하던 방앗간을 접고 2년 전 네가 잠든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너를 잃었지만 희망을 품었기에 가능했다. 북구 동천동에 79㎡(24평) 아파트를 장만했고, 시내 쪽에 떡집을 차렸단다. 장사는 시원찮지만 하늘에서 보고 있을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려고 엄마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단다.

네가 참 보고싶어 할 엄마(54)는 그 일 이후 3년 동안이나 서울을 오가며 우리를 두 번 울렸던 '국가배상법시행령'을 바꿨단다. 군 복무기간을 일괄적으로 36개월로 잡고 그 기간을 제외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터무니없는 제도를 개정해냈다. 국방부, 청와대, 각 정당 사무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수십 차례 편지를 보내고 쏘다니면서 건강도 나빠졌지만, 널 두 번 죽일 수 없다는 신념이 법을 바꾸게 된 힘이 됐단다. 너는 하늘에서도 고마운 존재다.

이웃의 위로에도, 사람들의 격려에도 우린 좀처럼 웃을 수 없다. 유족이라는 낙인, 잃은 것 때문에 죄인이 된 우리의 웃음은 곧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저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너를 만지며 이를 악문다.

네 동생(24)은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형 몫까지 열심히 하겠다며 지난 설에 다짐했다. 엊그저껜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며 네 친구들이 가게에 찾아왔단다. 엄마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너의 당당한 명예졸업장과 A+가 가득한 성적표를 또 어루만지고 있다. 언젠가 꿈에라도 나타나 엄마를 위로해주렴.

"이제 잊을 때도 됐지요?"라고 묻는 이웃들이 아직도 많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은 우리의 심정을 누가 또 알까.

영남불교대학 법당에 안치된 너를 찾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말에는 네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간다. 너로 인해 희망을 품는다.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다오.

2008년 2월 15일 아버지가.

(지하철 화재로 큰아들 손원찬(당시 영남대 원예학과 재학) 씨를 잃은 아버지 손태윤(57) 씨가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재구성했습니다.)

사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손태윤(57) 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글·사진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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