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여서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출렁이고 흔들린다. 지난 대통령 선거로 과거의 문제들이 대충 일단락되는가 싶더니만, 또다시 민심의 바람이 심상치 않고 불만의 파도가 고조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택했던 국민들이 자신들의 선택에 반신반의하기 시작하고, TV 속에서 불타는 남대문을 바라보며 속을 태우듯 망연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만 있다.
봄이 오면 소생하는 만물의 기운과 더불어 차라리 꿈자리가 어수선해야 하거늘, 어찌된 일인지 해외로부터는 경기침체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국내에선 치솟는 물가가 지갑과 장바구니를 덮치는데, 선거철 온갖 어지러운 말들의 황사마저 겹치니 국민 모두가 저마다 고비사막이 되어 매일같이 누런 흙먼지를 토해내고 있다. 이 바람을 잠재울 바람은 과연 어디 있는가. 봄이 온 줄로 알았는데 겨울의 시작이라고 흙먼지에다 재까지 뿌려 동서남북이 사라질 지경이니 어찌된 일인가. 이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 새 정부가 과연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봄날의 짧은 밤이 길게만 느껴진다.
직장과 취업이 일반 국민들의 생존경쟁이라면 공천과 선거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생존경쟁이다. 일반인들은 직장에 불만이 생기면 파업을 하고, 정치인들은 공천에 불만이 생기면 탈당을 한다. 다만 파업은 시도 때도 없으나 탈당과 분열은 선거를 앞두고 일어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공천에서 고배를 마시고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공공연히 외치는 엘리트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생존의 법칙에는 저항만 있고 수용은 없는 것인가? 부름을 받으면 벼슬길에 나가고 그러지 못하면 고향으로 내려가 마음의 넉넉함과 한가함을 즐겼던 전통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우리 정치가 어쩌다 사계절도 없고 삼한사온도 없는 영하의 살벌한 겨울만의 계절이 되었는지. 정치가 이러다 보니 정치인의 말들도 을씨년스러워져 가뜩이나 어려운 사회를 더욱 어지럽히고 앞장서 가꿔야 할 풍속마저 혼탁하게 만든다. 일국의 대통령이 "못해먹겠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와 같은 말을 서슴지 않으니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무엇을 입에 담을 것인가.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중하게 되고, 한 사람은 한마디 말로서 중하게 된다." 학봉 김성일의 말이다. 한마디 말로서 한 사람이 우뚝 설 수 있다면, 한마디 말로서 천길 만길 떨어질 수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어쩌다 국민이 자기들의 지도자를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각하들의 "못해 먹겠다"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과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는 험한 말버릇은 고쳐져야 한다.
그래서 요즈음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이 訓官正音(훈관정음)이다. 일찍이 백성을 위한 말은 있었으나 관료나 정치인을 위한 말씀이 없어 상하가 불통하고 좌우가 가로막혀 막말 수준이 돼야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라 내 큰 숨을 한번 들이쉬고 새로이 스물여덟 자를 펴 선진의 길을 열고자 함이라. 선거유세에 난무하는 말들은 모두 정음이 아니고, 바른 말의 과녁에서 크게 벗어난 것들이니, 무릇 관직에 오르거나 머물고자 하는 이들은 이 새로운 말을 속히 익혀야 할 것이다. 특히 청문회에 나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장관들은 최근 들어 무전유죄가 유전유죄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착오와 불법, 떡값과 뇌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물가와 경제성장에 대한 관료들의 말이 서로 달라 불필요하게 예민한 주식시장을 자극하지 말 것이며, 대운하 계획 또한 낙동강 철새처럼 수면 위로 떴다가 가라앉았다 해서도 안 될 것이라. 훈관정음을 깨치면 이 모든 사실이 확연해질 것이니 서둘러 익히고 깨달아 물길이 아닌 말길부터 제대로 트고 국민을 섬기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이다.
최병현(호남대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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