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숙면 훼방꾼 '이갈이'

'그저 잠버릇' 만만히 보다간 치아손상.두통까지

"'뿌드득뿌드득'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요."

성욱(4)이 가족은 늘 잠이 부족하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빠의 코골이와 엄마의 이갈이.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로 한밤중에 온 방이 떠나간다. 그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젠가부터 성욱이까지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젠 숙면도 숙면이지만 어린 성욱이의 '이'가 더 걱정이다. 혹시 이갈이 때문에 치아, 더 나아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갈이는 현재까진 정체불명의 병이다.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뚜렷한 치료법도 없다. 9일 '이의 날'을 맞아 '정체불명'의 이갈이에 대해 알아본다.

◆이를 갈면 다 이갈이인가

이갈이는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증상이다. 다른 근육은 모두 이완돼 쉬고 있는데 유독 턱근육만 긴장돼 힘을 쓰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를 가는 소리로만으로 이갈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소리가 난다고 다 이갈이는 아니다. 소리없이 이를 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자는 동안 턱근육의 움직임 정도다. 이는 턱근전도 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재로선 이갈이 인구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이갈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검사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6~20%가 이갈이를 하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갈이, 병일까 아닐까

이갈이의 원인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질병으로 분류하기도 모호하다. 예전엔 치아 교합 문제, 스트레스, 유전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지금은 교합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스트레스 등 정서적 문제나 유전의 가능성도 있지만 크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최근엔 이갈이를 운동이나 수면 장애 등 수면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수면학회는 이갈이를 뇌파 각성에 의한 수면장애로 추정하고, 일종의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얼굴의 운동장애, 다시 말해 잠을 자는 동안 머릿속 운동조절중추가 이상 활동을 일으켜 이갈이를 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치료할 것이냐 놔둘 것이냐

미국수면학회 기준에 따르면 이갈이가 병이긴 하지만 이갈이를 하는 모든 사람이 다 치료받을 필요는 없다. 이갈이 정도에 따라 다르다. 단순히 이를 가는 정도일 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2차적인 합병증이나 부작용, 후유증이 없으면 그냥 놔둬도 괜찮다. 그러나 이갈이 정도가 심해 이가 닳으면서 시릴 정도로 치아가 손상되면 사정은 다르다. 또 이를 갈 때 힘이 많이 들어가 턱 관절에 이상이 생기거나 얼굴, 특히 턱근육(저작근) 통증이나 얼굴 근육 긴장으로 두통까지 발생한다면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실제 이갈이 환자의 경우 하루 동안 치아에 가해지는 힘이 정상인에 비해 최소 3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이들 이갈이, 성장에 문제없나

자녀가 이를 갈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의 경우 보통 유치에서 영구치로 전환될 때 이갈이를 많이 한다. 자라면서 이갈이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평생 이를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무관심하게 놔둬선 안 된다. 당장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턱관절 이상, 두통 등 합병증세를 호소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경우 조기에 발견해야 치아는 물론 다른 합병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게다가 이갈이는 주로 수면 중 뇌파 각성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수면의 질이 나빠져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소아·청소년의 경우 병·의원을 찾아 진단을 받을 필요도 있다. 실제 미국 '슬립'(Sleep)지에 소개된 논문에 따르면 이갈이를 하는 아이들의 뇌파각성지수가 36.7회로 정상 아동의 20.7회보다 배 가까이 높았다.

◆치료 가능하나

아직 이렇다 할 특효 치료법은 없다. 이갈이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나 수술 등의 치료법이 없는 상태. 그러나 합병증 등 2차 문제로 고생하고 있거나 우려될 경우 최소한의 치료라도 받는 게 좋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치료가 교합안정장치 착용이다. 잠잘 때만 틀니와 비슷하게 생긴 플라스틱으로 만든 스플린트를 이에 끼우면 이갈이를 막을 수 있다. 물론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지만 현재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선 이갈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안전장치다. 최소한 치아의 마찰은 막을 수 있고, 간혹 착용 후 이갈이 증상이 줄어들기도 한다. 또 턱관절에 무리하게 들어가는 힘도 줄여 턱관절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최재갑 경북대치대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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