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길 끄는 시집·시 해설집 그리고 소설 모음집

◇영천댐 옆 삼귀리 정류장/성군경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가까운 길이든 먼 길이든 늘 먼 길이라 여기며 걷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화상처럼 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인생길을 굽어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치과의사이며 시인이고, 윤심덕과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성군경 시인이 시집 '영천댐 옆 삼귀리 정류장'을 출간했다.

시인 앞에 놓인 길은 언제나 먼 길이다. 그래서 시인은 숨가쁘게 걷는 대신 천천히 걷는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서 '마른 길을 먼지 나지 않게' 걸으며, 요령 피우지 않아서 '젖은 길은 푹푹 적시면서 막힌 길은 찬찬히 더 돌아'서 간다. 그는 그렇게 먼길을 걸어왔다.

성 시인은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시어는 무심한데 그 속에 든 말은 아리다.

'삼귀리 정류장/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낡은 나무 의자에는/ 다 팔아도 몇 만 원 될 것 같지 않은/ 자신의 몸뚱이 만한 보따리를 옆에 놓고/ 가을 석양처럼 무념한 표정의 할머니/ 혼자 앉아 있다.'

이 삼귀리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영천댐을 가로지르는 삼귀리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시인의 눈에는 요단강 다리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이 다리를 건널 때 시인은 노잣돈으로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챙긴다. 시인에게 삶과 죽음은 멀고도 가까우며, 분명 따로 있지만 둘이 아닌 모양이다. 127쪽, 7천원.

◇詩여, 다시 그리움으로/구석본 편저/시와반시 펴냄

구석본 시인이 2006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일신문에 연재했던 '시와 함께' 원고를 묶어 시 해설집 '시여, 다시 그리움으로'(시와 반시)를 출간했다. 155명 시인의 155편의 시를 수록했는데 유안진, 안도현, 박남준 등 9명을 제외한 나머지 시인은 모두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다.

구석본 시인의 해설은 작품을 분석하는 태도가 아니라 독자가 작품을 좀 더 편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풀어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장 역시 딱딱한 설명조가 아니라 시적 분위기를 띠고 있어 본지에 연재할 당시 해설문이 구석본의 시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구 시인은 "지역에 좋은 시인이 많음에도 작품으로 독자와 가까워질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며 "매일신문에 연재할 당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지역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구 시인은 "시 해설을 연재하는 동안 70년대부터 최근까지 지역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시집과 동인지를 탐독하고 작품을 선정했다"며 "작품선정에 등단 유무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다. 337쪽, 1만3천원.

◇ 영원히 목마르고 영원히 젊은/하일지 외 13인 지음/민음사 펴냄

한국 문단의 거장 이문열이 회갑을 맞았다. 내년이면 등단 30주년을 맞는다. 소설가 이순원, 구효서, 박상우, 심상대, 엄창석, 박석근 등 이문열의 후배와 제자 등 13인이 자신이 아끼는 작품들을 모아 책을 냈다.

'영원히 목마르고 영원히 젊은'은 축하의 마음과 함께, 작가 자신의 색깔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단편들이다. 여러 작가들이, 여러 주제와 배경으로 글을 썼지만 강한 주제의식은 시대를 품어 안았던 이문열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이순원의 '망배'는 사라져 가는 전통에 대한 그리움과 다음 세대에 대한 애정을 담은 소설이다. 엄창석의 '육체의 기원', 박상우의 '내 혈관 속의 창백한 시', 박석근의 '아바타를 사랑한 남자', 권성기의 '안개 속을 걷다'는 현대인의 병적인 콤플렉스와 불안한 정서를 치밀하게 파고든 작품에 해당한다.

중견소설가 구효서의 '승경'은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다네노 마을의 부를 일으키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인공호수를 만들어 기억에 남은 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다. 중견 소설가 구효서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38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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