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미술시장은 최대 호황을 누렸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에 따르면 경매와 아트페어 기록만 보면 2005년 280억원이었던 미술품 판매 금액이 2006년 600억원을 넘었고 작년에는 1천900억원에 육박했다.
미술시장은 주식시장처럼 호·불황이 거듭되는 양상을 보인다. 강남개발계획에 따른 부동산 붐을 타고 1970년대 후반 상승세를 타다 오일쇼크 등으로 하락세로 반전된 미술시장은 1980년대 말 다시 호황을 맞이했다. 당시 88서울올림픽이 호재로 작용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7.77포인트를 기록할 만큼 주식시장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미술품 가격도 2천만원 하던 작품이 1년 만에 1억원대로 올라가는 등 서양화를 중심으로 폭등 현상이 나타났다. 1990년대 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미술시장은 2005년 말부터 살아나기 시작해 지난해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수요층이 넓어진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세계적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미술품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8~13%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옥션이 1999년부터 7년간 거래된 블루칩 작가 15명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평균 수익률이 12%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하는 장에서도 개미군단들은 흔히 손해를 보는 것이 주식 투자 현실이다. 미술품 투자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품 투자가 주식 투자만큼 어렵고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주식 투자 원칙 가운데 미술품 투자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것이 분산투자다. 감상 차원이 아니라 투자 차원에서 미술품을 구매한다면 구상, 비구상, 현대, 근대 미술에 고루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구상 미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경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투자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작전도 조심해야 한다. 주식시장의 작전주와 같이 화랑이 특정 화가를 띄우기 위해 작품을 대거 사들인 후 가격을 올려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있다. 미술 시장에서 누가 각광받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선점하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으며 블루칩 작가들은 안정적이지만 보다 많은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저평가된 작가를 찾아야 하는 것도 주식투자를 닮았다.
또 너무 비싼 것을 사지 말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투자 요령이다.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작품은 되팔 때 어려움이 있으며 소위 상투에서 잡으면 반토막 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술 시장은 상투 장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그림 값이 올랐다. 한 갤러리 대표는 100만원에 팔렸던 지역 출신 젊은 유망작가 6호짜리 소품의 경우 2천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으며 또 다른 젊은 작가의 작품은 호당 15만원에서 50만원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존하는 국내 작가 가운데 최고 대접을 받고 있는 이우환씨의 100호 작품 '바람과 함께'는 지난해 8월 열린 옥션M 제1회 미술품 경매에서 추정가(3억8천만~6억원)를 훨씬 넘는 8억1천만원에 낙찰됐다. 예상 최고가 3천만원인 오치균의 10호 '정물'도 1억5천만원에 팔렸다. 상승 장세에 주식이 마냥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바람과 함께'는 10억원이 넘어갈 것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블루칩 작가뿐 아니라 검증이 끝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소위 말해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다. 신규 컬렉터들이 10억원 이상 미술품에 투자하는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 옥션M 제1회 경매 낙찰률은 94%였다. 외국 유명 미술품 경매 낙찰률이 높아야 60~70%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시간을 두고 기반을 다지지 못한 국내 미술시장에는 지난해 말부터 거품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 삼성 특검 등의 영향으로 하락세로 접어든 뒤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대부분 작가들의 작품 가격도 하락했다. 대구지역 한 컬렉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시장 상황에 휘둘려 고가에 작품을 구매한 뒤 가격이 빠져 속앓이를 하고 있는 컬렉터, 화랑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오를 이유가 없는 작가들의 작품까지 상승한 지난해 미술 시장은 정상이 아니었으며 거품이 제거되는 현재의 상황이 미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술품은 1, 2년 안에 값이 쑥쑥 오를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단기 매매가 주식시장에서 실패를 불러오듯, 장기적 안목으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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