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가를 이루다]한국애견학회 회장'한국애견협회 부심사위원장 정 병 곤

"10여년전인 1997,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셨지요. 그 무렵 애견인들 사이에는 '셰퍼드 수출하기운동'이 불붙었어요. 경찰견'수색견'맹인인도견 등 그 활동 범위가 넓은 셰퍼드는 역사가 10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제적으로 혈통이 확립돼 있는데다 우리나라에 우수한 셰퍼드들이 많아 중국'일본'대만'홍콩 등지로 팔려나갔지요. 우수한 셰퍼드는 한두에 5천만원을 받았고, 3~6개월 정도 되는 어린 강아지는 500만원 가량을 받았어요. 이렇게 해서 국내에 있는 셰퍼드의 80%가 외국으로 수출됐고, 100~200억원에 이르는 외화를 벌어들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국애견학회 회장, 한국애견협회(Korean Kennel Club) 부심사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정병곤(56)씨. 중학교 무렵부터 셰퍼드와 인연을 맺어 애견인으로 활동한지 40년이 넘은 그와의 대화는 10여년전에 있었던 '비화(秘話)'로 시작됐다.

생물학 박사인 정씨는 대학교수'전문애견인'번식인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전국 단위의 한국애견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애견협회 사냥견 심사위원장 직함도 갖고 있다. 1994년 한국사냥견대회 심사기준 및 시합 규정을 국제기준에 맞춰 도입하는 등 우리나라 애견문화의 개척자이자 보급자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하다. 대구산업정보대 애완동물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하고 있고 애견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경산이 고향인 정씨는 아버지가 키우던 셰퍼드와 인연을 맺으며 애견 인생을 시작했다. "셰퍼드와 함께 동대구역까지 같이 뛰며 운동을 했지요. 성격이 강인하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며 힘든 훈련을 소화하는 셰퍼드의 매력에 빠져 학창시절부터 나름대로 셰퍼드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생물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셰퍼드의 영향이 컸다고 봐야겠지요"(웃음). 78년 무렵 정씨가 길렀던 셰퍼드 '후리도'는 전국대회에서 5회나 챔피언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이 개는 애견인으로 유명한 탤런트 노주현씨에게 넘겨줬다.

셰퍼드의 수명은 13~15년 가량, 다른 애완견도 20년을 넘지 못한다. 40여년 동안 정씨의 손을 거쳐간 애견은 무려 300마리에 이른다. 스스로 전공은 셰퍼드, 부전공은 포인터를 비롯한 사냥견이라고 얘기하는 정씨에게 개는 어떤 존재인가를 물었다. "요즘 들어 애견을 두고 반려동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이 많지요. 저에게 개는 인격을 넓히고 인맥을 쌓도록 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또한 개를 통해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개와 함께 자연을 누비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를 느끼고 배우고 있지요."

셰퍼드와 포인터 등 애견에게는 무엇보다 혈통이 중요하다는 게 정씨의 지론. "우선 유전자 중 결점이 없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완벽한 몸매를 갖춰야지요. 그리고 무거운 강도의 노동을 견뎌낼 수 있는 체형도 살펴봅니다. 강인하고 충성스러우며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성격도 중요하지요." 셰퍼드 경우에는 후각 및 시각 능력을 비롯해 성격'이빨'체력 등 모든 것을 살펴 우열을 가리게 된다는 것.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애견 품평회 또는 전람회를 매년 개최하는데 고도의 전문성과 인격을 갖춘 심사위원이 챔피언이 되는 개와 꼴찌가 되는 개를 판가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가 있거나 인기가 있는 심사위원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대회에 많은 애견이 출전하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하지요. 애견의 심사란 우수한 개들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있지만 품평의 원래 목적은 우수견 번식에 있고, 좋은 유전을 하는 혈통을 선정하는 데 있습니다." 얼마전 독일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우승한 셰퍼드 경우 그 가격이 10억원을 호가할 정도다.

40년 이상 애견을 연구하는 데 매달린 결과 정씨는 한눈에 보면 그 개의 유전자를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작년에 전람회에서 2회 연속 챔피언에 오른 셰퍼드 '그라테 에버그린'의 경우 원래 주인도 그 개가 가진 우수한 유전자를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아직 1년4개월 밖에 안된 어린 나이지만 벌써 챔피언에 올랐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봐야지요." 현재 이 개는 후배가 맡아 돌보고 있고, 정씨는 포인터 3마리를 직접 키우고 있다. 그 가운데 나이가 13살(사람의 나이로 치면 80살)인 포인터 '해피'와의 애정은 각별하고도 뜨겁다. "일본에서 생후 40일 가량 되는 해피를 사와 같은 이불을 덮고 지내며 정성껏 키웠지요. 원래 주인도 해피가 가진 우수한 유전자를 몰라보더군요. 해피는 전람회에서 3년연속 1등을 했고, 제 자신처럼 우수한 포인터 50마리를 낳았지요.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기쁨'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정씨가 '명견'으로 일컫는 해피는 나이가 워낙 많아 백내장을 앓고, 다리도 불편하지만 죽는 날까지 정성을 다해 보살피겠다고 정씨는 다짐한다. 해피와 같이 기르고 있는 '아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스코트니 포인터 8마리 가운데 한마리다.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으로부터 분양권을 받은 일본의 한 노인을, 정씨가 끈질기게 찾아간 끝에 국내 처음으로 들여왔다는 것. "90세에 이르는 그 일본 어르신은 결코 돈을 보고 개를 분양해주지 않더군요. 개를 키울 능력과 애정이 있느냐를 보고 분양해줍니다."

셰퍼드와 포인터 등 애견에서는 암캐(모계)가 좋아야 한다는 게 정씨의 귀띔. "개를 키워보겠다는 분들은 무엇보다도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빨리'란 마음을 버려야지요. 조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우수한 개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혈통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정씨는 전 세계적으로 애견시장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강조하고 있다. "말 다음으로 비전이 있는 시장이 저는 애견이라고 봐요.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 경우 애견을 수출해 벌어 들이는 돈이 GNP(국민총생산)의 8%에 이를 정도이지요." 특히 대구는 애견과 같은 BT산업을 통해 발전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정씨의 얘기다. "프랑스 파리에 개가 500만마리 정도 되는데 밤에 짖지 못하도록 개에게 채우는 '노 바킹 밴드' 시장의 80%를 우리나라의 한 기업이 장악하고 있지요. 애견을 통한 부가가치효과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앞으로 대구에 '도그 파크'를 만드는 게 정씨의 목표다. "전국 어느 곳에도 아직 '도그 파크'가 없어요. 도그 파크에서 사람들은 개를 어루만지며 교감하고, 개의 묘기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지요. 하루빨리 대구에 도그 파크를 만들어 발전 가능성이 큰 애견산업에서 대구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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