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 & 문화] 등록문화재 유감

영천역 급수탑, 장단역 증기기관차, 창경궁 대온실, 화천 수력발전소, 한강철교, 청도 풍각면사무소, 대구 옻골마을 돌담장, 청도 이호우 생가, 반야월역사, 대구동촌역, 순종어차, 자유부인 영화필름, 박정희 대통령 의전용 세단, 상주의용소방대 소방차, 기아삼륜차트럭, 김구 서명문 태극기….

얼핏 보면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 죽 나열한 것들은 전부 현재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등재목록에 올라있는 우리의 당당한 문화유산들이다. 물론 문화재라고 하면 으레 고건축, 석조물, 도자기, 미술품 등으로만 생각하는 여느 사람들에게는 '야, 이런 것도 문화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어쩌면 별스럽고 어색한 유물이지 않을까도 싶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에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것을 등록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서는 해당 문화재가 생성된 지 50년 이상이 지난 것을 등록문화재의 대상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보존의 손길조차 닿지 못하고 개발논리에 무분별하게 파괴되어 사라지는 근대시기의 건축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문화재의 범주에 넣어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초기에는 건조물과 시설물만을 등록대상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 등록문화재의 범주에 포함된 각종 근대문화유산은 무려 400여건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의 운용과 확대에도 분명히 몇 가지 한계는 있어 보인다.

우선은 무엇보다도 재산권의 침해문제가 그것이다. 문화재 등록에 완강히 저항하는 소유주들이 적지 않고, 심지어 문화재등록 예고가 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순간에 해당건물을 철거해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반복되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둘째로, 등록문화재의 대상물이 대개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말이 좋아 근대문화유산이지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식민통치기관으로 사용된 일제의 관공서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교육시설, 종교시설 또는 일본인들의 사적인 거주공간까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보니, 때로 그러한 일제잔재까지 보존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등록문화재제도 자체의 느슨한 관리시스템도 큰 문제이다. 문화재등록을 유도하려다 보니 기존시설물의 상당부분을 신고만으로도 개축과 변형이 가능하도록 설정한 것이라든가 소유자가 임의로 철거 또는 훼손하더라도 이에 대해 특별한 제재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에 서울시 스스로가 등록문화재인 서울시청사(옛 경성부청사)를 함부로 철거하려 했던 사례가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잘 말해준다. 그야말로 문화재보존에 있어서 최악의 사례가 되어버린 이 사건의 주체가 개인소유주도 아닌 공공행정기관이었다는 점은 자못 충격적이다.

어쩌면 자칫하다가는 영영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근대시기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지켜냈다는 점에서 등록문화재는 분명히 매우 유용한 제도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등록문화재라는 굴레만으로는 불완전하고 매우 미약한 보호효과만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기존의 등록문화재라고 할지라도 어지간한 것들은 지금부터라도 가려내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관리하는 '지정문화재'로 부지런히 전환시켜 주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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