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가끔은 식상하고 피곤하다. 그럴 땐 집안 한켠 100년 넘는 세월을 견뎌온 중후하고 기품있는 고가구를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을을 닮은 고가구 하나로 집안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마음에 드는 고가구 한두 개를 골라 센스있게 배치하면 의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고가구는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잘 접목하면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편안한 휴식같은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질박한 맛과 소박한 멋,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고가구 인테리어의 세계를 엿보자.
김혜경(61'혜정차회 회장)씨는 20년 전부터 고가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그의 차실과 집에선 윗닫이인 돈궤'반닫이'경상'서안 등을 볼 수 있다. 돈궤 위에 계절에 맞는 야생화를 꽂기도 하고 과일을 얹어두기만 해도 훌륭한 인테리어. "우리 주거공간은 서양 건물이지만 동양적 요소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면서 "고가구는 단순하면서 담백하니까 어떤 것을 올려놔도 다 잘 수용한다"고 예찬했다. 모든 가구의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 무질서해보이지만 그 속에서 조화로운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김씨는 굳이 값비싼 고가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것을 이용한 인테리어를 즐긴다. 남이 쓰다 버린 나전칠기 농 서랍을 다식판으로 활용한다든가, 30년 넘은 손때묻은 탁자를 지금도 애지중지 사용한다. 떡판도 쓰고난 후 벽에 세워 벽화의 느낌을 연출하기도 한다. 김씨는 "우리 것에 대한 애착만 가지면 인테리어 요소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고가구'라고 하면 주로 조선 중'후기부터 1910년 이전까지의 가구를 지칭한다. 최근엔 그 범위가 확대돼 해방 이전까지의 가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해방을 전후해 우리나라 조형미 자체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목가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가구에도 유행이 있다. 한 때 나무로 된 연자방아 위에 유리를 깔아놓는 인테리어가 대유행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닫이와 2층 농, 3층 장도 유행을 선도했었다. 옷'서류'문서'그릇'책 등을 보관했던 반닫이는 지방색이 뚜렷해 언양'밀양'강화 등의 반닫이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차 문화의 발달로 차도구를 보관, 전시할 수 있는 2층 찬장이 인기. 고가구를 이용해 차실을 따로 만드는 차인구들이 많아 고가구가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가구를 아파트에 둔다면 고가구를 관리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옛날에는 한옥구조와 온돌 생활에 맞게 제작, 여름엔 팽창되고 겨울엔 자연적으로 수축되던 가구들이 사시사철 냉난방으로 건조한 아파트에선 비틀어지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미술협회 박상길 대구경북지회장은 "겨울에는 난방을 최소화하고 가습기를 틀어 변형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고가구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목재를 달리 했다. 남자들이 쓰던 사랑방 가구는 소나무'오동나무'은행나무 등 결이 드러나지 않는 종류를 사용하고 여자들이 사용하는 안방가구는 느티나무'먹감나무'물푸레나무 등 결이 화려한 나무를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고가구 인테리어가 의외로 어렵지 않다고 강조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거실 한쪽 벽면에 콘솔 대신 반닫이, 돈궤 등을 배치하는 것이다. 반닫이 위에 꽃을 꽂거나 도자기 등을 배치하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살아난다.
요즘 떡판, 툇마루 테이블 등도 인기다. 툇마루 테이블은 툇마루를 그대로
짜맞춰 다리를 이어붙인 것으로, 거실 한쪽 벽면에 TV 등을 놓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거실 한복판에 테이블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 때 교자상이 거실 테이블 용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툇마루 테이블이나 떡판 등이 더 인기다.
고가구의 매력은 뭘까. 박해숙 한국고미술협회 대구경북지회 총무는 '색의 매력'이라고 단언한다. "같은 시대, 같은 종류 가구라도 색깔이 똑같은 가구는 하나도 없다"면서 "화학약품이 아닌 옻칠'콩기름 등 자연재료로 열 번 이상 칠한 가구는 그 색깔이 은은하고 기품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손영학(책'나무공예' 저자)씨는 "사실 고가구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인들이 더 알아준다"고 말한다. "일본은 벽장이 발달, 독립된 가구가 많지 않은데다 조형적으로 복잡한 반면 우리나라 고가구는 순박하고 질박한 느낌에다 나무자체의 느낌이 좋아 일본인들이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가구는 투자의 개념으로 매매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인테리어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 있다. 손씨는 "환금성보다는 어디에 두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고가구를 고를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색깔. 칠을 다시 했는지 여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칠을 다시 한 고가구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입할 때 믿을만한 고가구 전문점을 통하는 것이 좋다. 가짜로 판명날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고미술을 취급하는 상인은 100여명.
평소 고가구를 자주 구경하면서 안목을 키워두는 것도 중요하다. 때마침 고가구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대구경북의 고미술품 수백여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한국고미술품대전이 메트로갤러리(053-556-9708)에서 27일까지 열린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TIP]고가구 인테리어
▶ 수납공간보다 인테리어와의 접목이 관건이다.
요즘 아파트엔 붙박이장 등 수납기능은 이미 갖춰진 곳이 많다. 그러니 원하는 장소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요소를 갖춘 고가구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 다른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책이나 잡지 등을 통해 고가구 활용 방법을 눈으로 익혀두는 것이 좋다.
▶ 동자가 좁으면 좁을수록 오래된 것이고, 백동 장식이 새하얗다면 조선후기 이후의 가구다.
장의 앞면을 보면 졸대 같은 선들로 면이 분할되는데, 이것을 동자라 한다. 근래로 올수록 동자가 넓어진다. 또 니켈을 섞어만든 백동장식은 은처럼 밝은 톤으로, 조선 후기의 가구다.
▶ 칠을 새로 했는지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고가구의 매력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는 것. 장식은 떨어지면 새로 할 수 있지만 칠을 새로 하면 손맛이 사라져 고가구의 질감을 잃어버린다. 구입할 때 칠이 보존된 것이지 확인하면 최소 손해보는 일은 없다는 것이 고미술상들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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