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고드름

일부러 겨울에 러시아를 찾은 적이 있다. 가장 러시아다운 모습은 겨울철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니즈니 노보고르드에 있는 글링카 콘서바토리에 갔을 때 지붕 처마 끝에 깜짝 놀랄 만큼 거대한 고드름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정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큰 것은 길이가 1, 2m도 넘어보였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반짝이는 크리스탈 기둥처럼 매달린 고드름들은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두려움마저 안겨주었다. 그 정도 큰 고드름이 떨어진다면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겨울이 한창 깊다. 빼놓을 수 없는 겨울 풍경의 하나였던 고드름을 보기가 어려워진 요즘이다. 1970, 80년대만 해도 눈 내린 뒤 처마마다 크고 작은 고드름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손가락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방망이만한 것까지 굵기와 길이가 다양했다. 날씨가 풀리면 낙숫물처럼 녹아 떨어지다가도 추워지면 다시 꽁꽁 얼어붙곤 했다. 마치 덕장에 내걸린 과메기처럼 얼었다가 녹았다가 했다.

볼이 발갛게 튼 아이들은 맛있는 군것질거리라도 되는 양 고드름을 따서 먹기도 하고, 고드름 칼로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다. 童心(동심)에 비친 고드름은 곱고 정겹고,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대상이었다.'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고드름 고드름 녹질 말아요/ 각시님 방 안에 바람 들면은/ 손 시려 발 시려 감기 드실라'(동요 '고드름' 중)

전국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서 동장군의 위세가 제법 떠르르한가 보다. 올겨울 들어 한강이 처음으로 얼어붙었고, 청계천 광장 분수에도 고드름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한다. 대구 수성못에도 모처럼 살얼음이 끼지 않았을까.

예전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얼음이며 고드름 소식이 새삼 반가운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가 지구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일으키고 있는 탓이다. 최근 5년간 그린란드, 남극대륙, 알래스카에서 무려 2조 톤이 넘는 대륙빙하가 녹았다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거대한 빙하 덩어리들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 건강을 생각하면 겨울엔 겨울답게 추워야 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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