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검찰, 灋정신 아는 해태가 되라

法 집행땐 공평해야 정의 선다, 대중이 거부하면 無法의 혼돈

멀쩡하던 남대문이 불타고 광화문 네거리에 밤마다 촛불시위가 이어졌을 때 항간에는 경복궁 앞 광화문에 세워둔 해태 石像(석상)을 치운 탓에 불기운이 일어났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궁궐 앞에 해태상을 세워 둔 것이 火氣(화기)를 막기 위한 것이란 속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宮(궁) 앞에 해태 상을 세워 두는 것은 불기운을 누르기보다는 王(왕=통치자)이 '정치를 公平無私(공평무사)하게 펼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獬豸(해태=해치)는 神獸(신수)로 알려진 상상 속의 짐승이다. 생김새는 소를 닮았으되 외뿔이 나 있고 용과 같은 비늘과 발가락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한다. 또한 해태는 사람 마음의 선악과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신통력과 神性(신성)을 띤 짐승으로 전해져 왔다. 법을 집행하고 죄를 다스리는 수사관이나 判官(판관)이 쓰는 모자에 해태를 상징하는 무늬를 넣어 豸冠(태관)이라 부른 것도 그런 정의로운 심판자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포청천이 입은 도포의 흉배(관복의 가슴과 등에 자수를 놓아 붙인 무늬 조각 천)에 해태 문양을 넣은 것도 시비와 선악을 공평무사하게 가려내 정의를 세운다는 해태의 법 정신을 상징한다.

法(법)이란 글자도 본디의 古字(고자)는 灋(법)字(자)에서 나왔다. 灋자 속의 廌자는 '해태 치(태)'자다. 破字(파자)를 하자면 일단 물이 소용돌이치듯 어지럽다가 廌(해태)가 氵(물)속에 들어갔다가 去(거), 즉 '나가고' 나면 수면 주위가 고요하게 가라앉고 정리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灋자에서 廌자가 빠져나오면 法자만 남게 된다. 소용돌이치듯 어지럽던 물(사건이나 비리)속도 해태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사리와 시비가 공평하게 가려지듯 엄정 공명하게 집행되는 것이 곧 法이란 뜻이다. 그래서 죄가 있다고 의심되고 의혹이 있는데도 숨기고 부인하면 해태 몸에 닿게 해서 죄의 有無(유무)를 알아냈다고도 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500만 달러의 거액이 전달된 사실을 두고 노 씨 측과 검찰 측의 말과 주장이 다르다. 경주시 재선거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박'친이 세력 간의 사퇴압력 발언의 진실 공방 또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이 역시 속설대로라면 해태 몸에 갖다대 봐야 가려질 판이다.

명단 공개 발표가 왔다 갔다 하는 장자연 사건의 실체나 룸살롱에다 모텔 이야기까지 얽힌 청와대 행정관들의 성 접대 진실 캐기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련의 사안들을 헤쳐 감에 있어 검찰이나 정치권이 '뻔-하다'고 믿는 대중적 기존성향과 다른 쪽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들거나 '수사 피로감' 같은 구실로 피해가려 들면 대중은 이성적 이해보다는 감성적 의구심 쪽을 좇게 된다. 스스로 '해태'의 역할을 하려 들게 된다는 뜻이다.

생계비 신용대출, 파리 목숨 같은 단기 인턴 취업에 목을 매고 있는 계층이 늘어날수록 그런 경향은 증폭될 위험이 커진다. '500만 달러' '청와대 성매매' '사퇴 압력' 따위는 용어 자체가 이미 대중의 민심 속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그런 위험성을 발화점까지 달구기에 충분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 검찰이 곳곳에 터져 있는 사건들의 구정물 속에 들어가 저항세력이나 외압에 맞서 소용돌이를 누르고 수면을 평정하는 해태의 역할을 못 해내면 그 다음은 대중이 물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촛불이든 시위든 선거를 통한 저항의 형태든 직접 '심판'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대중이 해태가 되는 상황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따라서 검찰이 유념해야 할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최후의 과녁으로 정해둔 활쏘기든 활을 쏘다 보니 과녁으로 뜨게 된 것이든 초지일관, 灋의 정신으로 뚫고 가야 대중도 함께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정의사회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지자체 단체장 줄소환을 앞두고 검찰이 法 정신을 뛰어넘어 해태의 灋 정신으로 가 줄 것을 당부하는 이유다.

해태(검찰)가 지나가도 구정물 파도가 그대로 남더라는 불신이 번지면 그 다음은 대중이 해태가 되는 무법의 혼돈이 온다.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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