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 신' 개관 초대전 갖는 장이규

소나무가 늘 푸르듯 내 그림도 늘 소나무

▲달서구 두류2동 성안오피스텔 16층에 마련된
▲달서구 두류2동 성안오피스텔 16층에 마련된 '아트빌리지' 작업실에서 만난 장이규. 이번 전시회는 지역 화가들에게 아트빌리지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갤러리 신의 신홍식 대표가 그림을 모두 사들여서 마련된 초대전이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음을 옮긴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이 눈에 밟히고, 행여 세파에 시달릴 꽃들이 걱정스러웠던지 나지막한 관목들은 감싸안듯 사방에 내려앉았다. 딱히 정처가 있어서 나선 걸음은 아니었는데. 저 멀리 소나무를 돌아서면 그리운 무엔가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다가서고, 뜬금없는 슬픔이 슬며시 치밀어 목젖을 뜨겁게 데운다.

장이규를 만나면 무작정 손을 이끌고 들로 산으로 나가자고 조르고픈 충동을 참느라 힘들다. 그림을 보노라면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고, "저기 어디"라고 답할라치면 "그럼 한 번 가보자"고 재촉하고 싶어진다. '갤러리 신' 개관 기념 초대전을 앞둔 지난 3일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작품 마무리가 덜 됐다며 조바심을 내지만 않았다면 분명 손을 잡아끌었을 터.

나이를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1954년생이니 올해로 56세. 머리에 희끗희끗 내려앉은 서리발만 아니면 12세 어린 띠동갑 나이로도 안보일 만큼 그의 얼굴은 생기가 넘친다. 왜 소나무를 고집하느냐는 물음에 "녹색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푸름을 그는 절묘하게 잡아낸다. 공기 원근(멀리 있는 사물일수록 흐릿하게 보이는)과 선 원근을 기가 막히게 가미한 그의 그림은 마치 자연 속 한 장면을 뽑아낸 듯하다. 하지만 극사실과는 거리를 둔다. 녹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때문. 그러나 그가 그린 소나무는 그저 푸른 것이 아니다. 검기도 하고 잿빛을 띠기도 하며, 때론 은근히 붉은 광채를 띠는 듯 보인다. 산을 배경으로 선 소나무는 푸근해서 좋고, 하늘을 배경으로 한 소나무는 눈부시게 맑아서 좋다. 눈밭에 홀로 푸른 소나무는 외로운 듯 강해서 좋다.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점쯤 소장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하는 장이규의 작품. 지난 1일부터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 열리는 초대전에 나온 그의 작품 수십여 점도 모두 화랑 측에서 사들인 뒤에 전시하는 것이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배님은 그림을 왜 그립니까?" 자못 진지한 답을 기다리던 후배에게 장이규는 이렇게 말했다. "먹고살라고." 장이규는 솔직한 사람이다. 하기야 화가가 물감 짜 먹으며 그림 그리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팔기 위해 유행에 영합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한 길을 우직하게 파고들다 보니 그림이 인정받는 것은 구분돼야 합니다." 장이규는 같은 소나무를 그리고, 같은 녹색을 칠해도 작년 그림과 올해 그림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얼핏 닮은 듯 보이는 소나무의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다. 소장가들이 그의 그림 한 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싶다. 전시회는 18일까지 열린다. 053)623-3002.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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