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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조 들여다보기] 묏버들 가려 꺾어 / 홍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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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꺾어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묏버들, 지금쯤 산골짜기 여기저기서 잎사귀를 틔우고 있으리라. 이 시조는 조선 중기 8대 문장가로 꼽히는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을 사랑한 경성 기생 홍랑(洪娘)의 이별의 아픔이 담긴 작품이다.

홍랑은 효녀였다. 홀어머니와 살았는데 오래 병석에 있어 걱정하던 중 80리 떨어진 곳에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열두 살 나이에 꼬박 사흘 밤낮을 걸어 찾아갔다. 효성에 감탄한 의원은 나귀 등에 그를 태워 왔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홍랑이 쓰러져 의원은 그를 치료하는 일에 매달렸고, 동네 사람들의 주선으로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 홍랑은 그 후 석달 동안 무덤을 지켰다 한다.

천애고아가 된 그를 의원이 데리고 와 수양딸처럼 키웠으나 홍랑이 어머니 무덤이라도 자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해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타인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기적(妓籍)에 들었다. 홍랑은 곧 유명해졌다.

숱한 유혹들을 뿌리치다가 1573년 가을 고죽이 북평사(北平使)로 왔을 때 그에게서 얼굴도 모르는 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품에 안겼다. 이날부터 고죽을 모시는 일에 전념했으나 이듬해 봄 고죽이 서울로 가게 되었다. 쌍성에서 작별하고 함관령(咸關嶺)에 이르렀을 즈음 날도 저문데 비마저 뿌렸다. 그때 읊은 시다.

작별하고 1년 남짓 지나 고죽이 병석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7일 밤낮을 걸어 서울로 갔다. 그때는 함경·평안 사람들의 도성 출입을 금한 '양계의 금'이 시행되고, 명종비 인순왕후의 승하로 국상마저 겹쳤다. 이를 구실로 두 사람 사이를 헐뜯은 탓에 고죽은 관직이 삭탈되고 홍랑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죽은 '말없이 마주 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말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라는 시로 홍랑을 보냈다. 고죽은 홍랑과 두 번째 이별 후 1582년 종성 부사로 함경도에 다시 파견됐으나 부임과 동시에 객관에서 객사했다. 그후 홍랑과의 재회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애끊는 그 사랑의 시는 400년이 넘는 지금도 해마다 버들강아지로 피어나고 있다.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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