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위구르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북서쪽 맨 끝에 있다. 인구는 2천100만 명이지만 면적은 166만㎢로 중국 행정구역 중 가장 넓어 남한(약 10만㎢)의 16배가 넘는다. 위구르족과 漢(한)족이 86%에 이르고 카자흐족, 回(회)족 등이 뒤섞여 살고 있다. 위구르족은 약 8천400만 명으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56개 민족 중 한족, 壯(장)족 등에 이어 숫자로는 6위에 올라 있는 다수민족이다.

위구르는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연결 지역으로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동'서양 교역의 요충이다 보니 늘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랫동안 흉노, 돌궐, 몽골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국의 세력이 강했던 漢(한)과 唐(당) 때는 중국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가 쇠퇴하면서 위구르족은 바이칼호 남부에서 시베리아 중부, 몽골, 만주 북부, 연해주에 이르는 거대한 위구르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元(원)의 지배에 이어 18세기 중엽에는 淸(청)의 침략으로 1884년 신장성이 설치되면서 완전히 청의 영토가 됐다. 이어 1933년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1944년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이 세워졌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됐고, 1955년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위구르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유혈폭동이 벌어졌다. 중국 공안의 강력한 진압에도 제2의 도시인 카스까지 확산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156명이 숨지고 1천여 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는 위구르 자치구와는 수천리 떨어진 광둥(廣東)에서 시작됐다. 완구 공장에서 해고된 한족 남성이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감정을 부추기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두 민족 간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위구르족 여성이 숨지자 그동안의 차별과 빈부 격차 등 민족감정이 폭발하면서 反漢(반한) 시위로 번진 것이다.

위구르는 티베트와 함께 독립 의지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이슬람 국가였던 위구르 제국의 영향으로 위구르족은 대부분 이슬람 교도다. 이를 이유로 중국이 러시아처럼 분리되면 티베트와 위구르가 가장 먼저 독립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 정부는 무력으로 소수민족의 반발을 누르고 있다. 억압이 강하다는 것은 이들의 독립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인가.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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