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멘토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인 멘토르에게 맡겼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선생, 조언자, 아버지 역할을 충실히 했다. 여기에 어원을 둔 멘토(Mentor)는 지혜와 신뢰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뜻한다.

멘토라고 해서 꼭 얼굴을 보면서 가르침을 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古人(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으니 아니 가고 어쩔꼬." 퇴계 이황이 지은 연시조 '陶山十二曲'(도산십이곡) 중 한 시조다. 옛 성현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지 못하지만 그분이 실천한 진리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느냐는 뜻을 담고 있다. 비록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가르침을 주고받은 사이는 아니지만 여기에서 고인은 멘토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고 볼 수 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사퇴를 보면서 새삼스레 멘토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세상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스폰서는 넘쳐나는 반면 정신적으로 지혜나 감화를 주는 멘토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천 후보자가 낙마한 결정적 원인은 스폰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고가 아파트 구입 자금 출처와 업자와의 골프 여행과 같은 일에서 스폰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쏟아지는 의혹을 해명한다고 했지만 되레 의혹은 더 커졌고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일이지만 천 후보자가 인생 선배와 같은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조언이나 충고를 받아 처신을 바르게 했다면 낙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검찰 선배들이 간 길을 잘 살폈다면 권력은 물론 명예마저 잃는 잘못은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제에 스폰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확 바꾸는 게 옳다. 힘깨나 쓰는 사람이라면 스폰서를 서너 명은 거느리고, 스폰서를 잘 구하는 게 그 사람의 능력인 것처럼 쳐주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참 나쁜 병폐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이라면 스폰서를 두려는 마음부터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제2, 제3의 천성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도자라면 돈을 대주는 스폰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지혜나 감화를 주는 멘토를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멘토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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