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양학교 댄스스포츠부 학생 8명에게 12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보낸 5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다. 이날 열린 제1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 장애인 댄스스포츠챔피언십에 출전, 지적장애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 2007년부터 성치 않은 몸으로 라틴 리듬에 몸을 맡긴 이후 최대의 성과를 올린 날이다.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선 지적장애인
권득현(19), 이정도(17), 김봉우(17)군과 조명정(18), 구민지(17), 우지영(17), 김향미(15), 김미경(14)양. 8명의 정신지체 학생들은 이날 비장애인 대학생(대구대 체육학과·대구가톨릭대 무용과) 언니·오빠와 짝을 이뤄 공연을 펼쳤다. 신나는 라틴음악에 맞춰 군무를 펼치며 체육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부터 힘찬 박수 갈채를 이끌어냈다. 연습실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평소와 다르게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막상 공연에 들어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동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지도를 맡은 백선옥(30·여) 교사는 "평소 연습 때 틀려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일찍 내려오느라 대회가 끝나기 전에 빠져나오는 통에 다음날에야 수상 소식을 접했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감동은 마치 공연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린 듯했다.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선생님, 너무 기뻐요. 다른 대회에서도 꼭 우승해요"라며 환희의 순간을 함께했다.
정신지체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남양초교 댄스스포츠부의 시작은 2007년 4월.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지적장애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해 댄스스포츠로 변화를 이끌어 보자며 백 교사와 박종희(47), 전미설(28·여) 교사가 뜻을 맞추면서였다. 이들은 제자들에게 춤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댄스스포츠를 배우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박 교사와 인연이 있던 대구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김은미씨가 기꺼이 교습을 도왔다.
◆댄스 삼매경으로 1위 쾌거
16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댄스스포츠부는 방과 후 학습과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댄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초기 연습은 물론 쉽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해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도 지치기 일쑤였다. 짜증이 나면 친구들에게 화풀이하는 학생도 있었다.
"연습할 때 상대방 발을 밟는 경우가 많아 도중에 서로 웃느라 춤이 끊어지는 건 허다했어요. 다른 사람과 한 번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못 고치는 경우도 있었죠.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돌릴 때 한 번 돌려야 할 것을 계속 돌려 빙빙 돌다 쓰러지는 여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춤꾼의 면모를 갖춰 갔습니다."
민지양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동작을 맞추었다. 음악을 구해 시간 날 때마다 들으며 의지를 다졌다. 웨이브 동작을 거뜬히 해내는 쇼맨십도 보여주었다. 정도 군도 교사들을 졸라 틈틈이 새로운 동작 연마에 정성을 기울였다. 향미양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만 2년 넘게 갈고 닦은 솜씨가 이번 대회의 결과로 나타났다. 실제 연습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 백 교사의 귀띔. 대회 한 달을 앞두고 수업이 끝난 뒤에 하루 2시간 정도 연습한 것이 전부였다. 전국 대회인 만큼 부담도 됐을 법한데 아이들은 담담하게 준비했다. "춤을 추니깐 그저 좋았어요. 새로운 곳에 가서 대회를 할 수 있잖아요."
댄스스포츠를 통해 학생들이 얻은 것은 대회 성적과 성취감만이 아니다. 2년 남짓 댄스스포츠를 배우며 여러모로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먼저, 파트너와 함께 호흡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서로 모르고 부족한 부분을 묻고 가르쳐 주면서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법을 배웠다. 그만큼 인내심이 커진 셈.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던 학생들도 이젠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백 교사는 "여러 가지 교육적인 효과 외에도 졸업·취업 이후 사회로 진출해 일반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을 익힌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분석했다.
16일부터 방학에 들어간 댄스스포츠부 학생들은 이제 한동안 춤출 기회가 없어졌다. 개학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학생들의 아쉬움은 크다.
"빨리 개학해서 계속 춤출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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