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리뷰]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전면전 앞둔 불사조 기사단

줄거리를 뻔히 아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지루하고 위험한 일도 없다. 영화 감독은 온갖 시각·음악·음향적 장치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려 애쓰지만 관객에게는 까만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마술만큼이나 시시할 따름이다. 게다가 원작의 감동을 망치는 영화를 봤을 때는 무진장 기분이 상해서 난폭해질 수도 있으니 위험한 노릇이다. 이런 부담을 안고도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드는 이유는 일단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하향 곡선 쪽이었다. 1, 2편은 원작을 크게 해치지 않는 편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웠지만 나머지는 원작의 하이라이트를 짜깁기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엉성했다. 책을 읽지 않은 관객은 갑작스런 상황 전개 때문에 당황했고, 원작을 읽은 관객은 옆에 앉은 죄로 귓속말로 설명해주느라 진땀을 뺐다. 하기야 영어원문만으로도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150분 남짓한 시간에 꾹꾹 눌러 담으려니 당연한 일이다. 과연 6편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잿빛 우울함 속에 피어나는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영화는 뺄 수 있는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러닝타임 150분을 충실하게 활용했다. '혼혈왕자'는 1, 2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마법세계의 악의 무리가 다시 부활하면서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영화 속 분위기도 내내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가장 활기찼던 마법세계의 상가인 다이아곤 앨리마저 황폐해졌고, 학부모들은 호그와트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려 할 정도로 불안감에 떨고 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곳곳에서 활보하고, 마지막 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조들도 보인다.

'혼혈왕자'의 이야기 구조는 크게 두 가지다. 과거 호그와트에서 볼드모트를 가르쳤던 슬러그혼 교수의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의 볼드모트, 즉 톰 리들의 과거를 쫓아가며 그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톰 리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금지된 마법인 '호크룩스'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를 슬러그혼 교수를 통해 알아내며, 결국 2편에 등장한 일기장 등의 물체에 자신의 영혼을 나눠서 담았음을 덤블도어는 알게 된다. 볼드모트가 죽지 않고 부활한 이유도 바로 자신의 영혼을 나눠 담은 7개의 호크룩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호크룩스를 모조리 파괴하지 않고는 볼드모트를 완전히 물리칠 수도 없다. 숨겨진 호크룩스 중 하나의 위치를 찾아낸 덤블도어는 해리와 함께 이를 파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 여행은 덤블도어의 죽음으로 결말이 나고 만다.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덤블도어도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마법사 간달프처럼 부활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울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원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우울하지는 않으니까. 론의 쌍둥이 형제가 만든 마법 장난감 가게만큼은 황폐함 속에도 활기가 넘치고, 영화 속에서 사춘기를 시작한 주인공들(실제 배우들의 나이는 19~21살이 됐지만)은 풋풋한 사랑의 이야기를 피워낸다. 주인공들의 복잡한 애정관계라는 또 다른 이야기의 얼개 덕분이다. 해리는 론의 여동생 지니에게 끌리고, 론은 '3개월 동안 미친듯이 키스를 하다가 입술이 부르틀 정도인' 여자 친구와 사귀다가 결국 헤르미온느와 묘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 복잡한 러브 라인 속에서 주인공들이 내뱉는 한 마디와 엉뚱한 행동들이 폭소와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낸다.

다만 워낙 방대한 양의 원작을 줄이고 줄이다 보니 필요한 부분까지 생략해 버렸다. 영화 후반부에 스네이프 교수가 자신이 혼혈왕자임을 밝히지만 왜 그런 별명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게다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들이 주인공들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 변화를 영화 대사만으로 읽어내기에는 다소 무리.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이번 영화는 상당한 압축과 절제를 보여줬다. 원작에 충실한답시고 그저 펼쳐놓기식 전개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옆 사람에게 귀동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리 포터-1학년부터 5학년까지

1학년에 갓 입학한 해리 포터는 '마법사의 돌'을 둘러싼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첫 영화였던 만큼 조앤 롤링이 창조한 마법세계를 어떻게 영화로 그려낼지 잔뜩 기대에 부풀었고, 다행히 영화는 기대에 부응했다. 앳된 얼굴의 주인공들은 단박에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해리 포터(대니얼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엠마 왓슨),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 갓난 아기였던 해리를 죽이기 위해 죽음의 마법을 던진 볼드모트. 하지만 되돌아온 주문 때문에 볼드모트는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해리가 10살이 돼서 호그와트에 입학하던 해, 아직 몸이 없는 볼드모트는 영생의 돌인 '마법사의 돌'을 훔치려는 시도를 한다. 어둠의 방어술을 가르치는 퀴렐 교수도 여기에 등장한다. 터번을 풀어헤친 퀴렐 교수의 뒤통수에 붙어있던 징그러운 볼드모트의 모습이라니.

2학년 때는 '비밀의 방'을 찾게 된다. 볼드모트의 원래 이름인 톰 리들의 일기장에 관한 이야기다. 일기장을 통해 비밀의 방이 열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일기장을 론의 동생인 지니에게 전해준 인물은 '죽음을 먹는 자' 루시우스 말포이로 드러난다. 알고보니 일기장은 볼드모트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위험한 물건. 6편 '혼혈왕자'에 와서야 비로소 일기장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3학년이 된 해리는 '아즈카반의 죄수' 때문에 두려움에 떤다. 알고 봤더니 아즈카반을 탈옥한 죄수 시리우스 블랙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볼드모트에게 끝까지 맞서다가 누명을 뒤집어 쓴 인물. 늑대인간 루핀과 교활하기 짝이 없는 배신자 웜테일도 여기에 등장한다.

4학년이 되면서 해리는 마법학교 3곳의 대표가 겨루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간다. 물론 이 시합은 볼드모트가 해리를 불러내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것. 무서운 용과의 싸움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처음으로 사상자도 생긴다. 바로 케드릭. 해리는 볼드모트의 부활을 선언하지만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5학년이 된 해리는 '불사조 기사단'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해리와 볼드모트를 둘러싼 예언이 밝혀지고, 마법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시리우스는 사촌인 베아트릭스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된다. 전면전을 앞둔 불사조 기사단과 볼드모트를 추종하는 '죽음을 먹는 자'들 사이의 긴장감이 갈수록 고조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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