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로 안동을 내세우면서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1894년 안동에서 일어난 갑오의병이다. 일본이 조선 정부의 내정 개혁을 요구하면서 경복궁을 점령하는 갑오변란을 일으키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안동에서 의병 항쟁이 시작됐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근대사에서 최초로 전개된 의병 항쟁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출발지라는 역사성을 안동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51년간 한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이끌어갔다는 점, 전국에서 가장 많은 310명의 독립 유공자와 역시 가장 많은 10명의 자정 순국자를 배출했다는 점, 분야별 최고지도자 상당수가 안동인이었다는 점 등이 그 뒤를 따르는 근거다. 독립운동 지도자들 뒤에는 안동 유림이 있었다. 이들은 퇴계의 학문적 영향을 바탕으로 자기반성과 자각을 통해 혁신 유림으로 거듭났으며 국내외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대표적인 인물의 한 분이 석주 이상룡 선생이다. 협동학교를 설립해 안동에서 교육 구국 운동을 벌이다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옮겨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주도했다. 남만주지역 독립운동 지도자로 우뚝 선 석주는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 취임해 이승만 임시 대통령 탄핵 이후 혼란에 빠진 임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석주가 1911년 만주로 망명한 뒤 지은 한시에는 고향을 등진 아픔과 광복에 대한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어지러운 산들은 마치 성처럼 에워싸고 있고/ 장마는 괴로울 정도로 지루하고 개이지 않네/ (중략)/ 미치도록 정말 막다른 길에서 통곡하고 싶지만/ 이치는 끊어진 곳에서 다시 분명히 생겨나리라/ 험한 곳에서는 오직 서로 의지할 도리뿐인데/ 반드시 하늘의 해가 다시 밝아지는 걸 보리라."
독립운동을 철저히 탄압한 일제는 유림의 저력을 깨기 위해 안동 지역 명문 가문에 대해서도 심한 박해를 가했다. 퇴계 종가가 두 차례나 불태워진 것, 중앙선을 놓으면서 석주의 고택 임청각을 절반 가까이 훼손한 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임청각의 훼손 이전 옛 사진이 공개됐는데, 99칸 임청각의 당당했던 위용과 이를 침탈하려 한 일제의 반(反)문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석주가 만주에서 맞았던 장마를 떠올려본다.
이상훈 북부지역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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