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낮 12시 대구 남구 이천동의 어르신 쉼터. 복날이 무색하게 시원하게 비가 내린 이날 어르신 쉼터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30여명의 어르신들은 잔치국수를 먹고 수박으로 입가심을 한 뒤 이천동사무소 민요회원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민요회원들이 신명나는 가락을 뽑자, 어르신들은 함께 손뼉을 치고 따라불렀다. 강이순(82) 할머니는 "경로당에서 적적하게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챙겨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식사와 공연을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선물한 사람은 서기홍(72·남구 이천동)씨다. 서씨는 31일까지 이천동 지역 10여곳의 경로당을 돌며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밦값은 100여만원 정도지만 서씨의 형편으로 거금이다. 서씨는 이천동 재개발지역에서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생계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철을 팔아 버는 돈이 전부다. 구청에서 서씨의 선행을 보고 6개월 동안 한시 생계보호대상자로 월 12만원을 지원하고 주위에서 한푼 두푼 보태는 것이 전부다.
언뜻 고달픈 삶으로 비치지만 그의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 넉넉하다. 서씨는 자신의 수입 대부분을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데 쓴다.
홀몸 어르신들에게는 연탄과 쌀을 사서 나눠주고, 어려운 형편의 이웃에게는 그동안 모아둔 양말과 옷가지, 신발 등을 전하고 있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선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직접 목욕을 시켜주고 이웃의 낡은 집을 고쳐주는 '만능 자원봉사자'로 통한다. 지난해 11월과 지난 3월에는 이천동 한 음식점에서 노인들을 초청해 소고기 국밥을 대접하는 등 1년에 3, 4차례 무료급식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서씨는 "자식들이 다 장성했고 혼자 지내니 봉사하기가 더 수월하다"며 "주변의 칭찬을 듣다 보니 이제는 하루라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병이 날 지경"이라고 껄껄 웃었다. 장성칠(68) 씨는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하시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다"고 했다.
나눔의 삶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서씨는 "남을 도우면 내 마음이 두 배, 세배 부자가 되는 것 같이 한없이 기쁘다"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30여 년 전 대구역 앞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할 때부터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면서부터 느꼈던 그 기쁨을 잊지못해 지금껏 선행을 계속하고 있다.
서씨는 "앞으로도 이웃들에게 베풀며 살겠다"며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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