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열외인종 잔혹사

주원규 지음/한겨레출판

무공훈장을 박음질한 군복을 입고 '시국강연'을 펼치는 장영달, 그는 여차하면 상대를 '빨갱이' '좌빨'로 몰아세운다. 월 88만원을 받으며 용역회사 설비기사로 일했으나 지금은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김중혁, 그는 점심 무료 급식소를 찾아다니며 하루를 알차게 채운다. 명품 같은 짝퉁을 애용하며, 미국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취업에 도움이 될 자격증을 땄으나 외국계 제약 회사의 무급 인턴사원인 윤마리아, 그녀의 꿈은 오직 정규직 사원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열일곱살 청소년 기무는 꿈도 희망도 없다.

소설은 이 비루한 네 사람이 하루 동안 펼치는 비루한 이야기다. 네 명의 주인공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코엑스 몰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만난다. 오후 4시, 코엑스 몰에는 연미복 차림에 양머리 인형을 뒤집어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나타나 인질극을 벌인다. 네 사람은 이 상황을 제 마음대로 이해한다. 장영달은 빨갱이 집단의 출현으로, 김중혁은 노숙자들의 쿠데타를 이끌 메시아로, 기무는 게임업체가 만든 이벤트로, 윤마리아는 인사권을 쥔 본부장의 카니발로….

작가는 얽히고설킨 네 명의 열외인종을 통해 우리 모두가 '열외인간'이라고 말한다. 제1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320쪽, 1만원.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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