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데브다스/사라트찬드라 챠토파드히아이 지음/박종한 옮김/문학나무 펴냄

'인도 천년 사랑을 울린 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한국 독자에게는 '이런 사랑도 있나' 싶을 만큼 낯설다.

일반적으로 남녀의 사랑은 이기적인 경향을 띨 때가 많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상대의 이해나 양보를 요구하는 형식 말이다. 그래서 싫다는 상대에게조차 일단은 매달려 본다. 어떤 사람은 거머리처럼 달라붙기도 한다. 이 소설 속 남녀 데브다스와 파르바티는 죽도록 사랑하지만 물러서 있다.

데브다스와 파르바티는 함께 자랐다. 함께 장난치고, 때로는 미워하고 때리기도 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여자는 당연히 남자가 자신과 결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신분이 높고 여자는 낮아 두 사람은 맺어지지 못했다. 집안의 반대로 결별한 후 남자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는 평생 자신을 학대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부와 명예를 내팽개치고, 술에 빠져 몸을 망가뜨리고 끝내는 아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지만 도착하지 못하고 동구 밖에서 죽는다.) 그는 평생 파르바티를 그리워하지만 함께하지는 않는다. '함께 달아나자'는 파르바티의 제안도 거절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자신이 여자의 삶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브다스를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창녀 찬드라무키)는 자신이 남자를 위해 치료해 줄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고, 육체적 쾌락을 줄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남자의 체면을 세워 줄 수 없기에 바라만 볼 뿐이다. 그녀는 남자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장소에서 기다릴 뿐이다.

한국인과 인도인이나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랑하지 않더라도 혼인관계를 이루면 '사랑을 완성'하는 것일까. 죽도록 사랑하더라도 혼인하지 않으면 '결핍상태'인 것일까. 많은 소설들은 사랑하지만 결혼 못하면 결핍, 결혼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결핍이라고 말한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잃고 지루한 일상과 조우' 한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설명과 묘사가 드물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소설 '데브다스(이 소설의 제목이자 남자 주인공 이름)'는 설명이나 묘사가 극히 드물다. 배경이나 무대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설명이나 묘사 대신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인물됨이나 상황을 전한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인물간의 갈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이타적이고 선하다. 소설이 개인의 심리에 치중하고 있는 만큼 주인공이 갈등하는 상대는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가 이기지 못하는 적은 오직 자신일 뿐이다.

흔히 연애소설에 등장하는 삼각관계조차 없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있지만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는 결코 나의 사랑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데브다스를 사랑하는 파르바티와 찬드라무키도 마찬가지이다. 두 여인은 한 남자를 사랑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의 존재조차 모른다. 만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로 인해 고통스럽거나 방해받지 않는다. 두 사람 역시 투쟁의 상대는 그녀들 자신일 뿐이다. 주인공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존재 역시 자신이다. 특별하고 낯선 소설이다.

247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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