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쟁기질과 벽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봄날, 농부는 어김없이 쟁기질을 한다. 소나 경운기를 앞세운 쟁기질로 흙을 갈아엎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위에 있는 흙은 밑으로, 밑에 있는 흙은 위로 올라오는 자리바꿈을 한다. 쟁기질한 흙은 어머니 품처럼 부드럽다. 파헤쳐진 흙 속에 뿌려진 씨앗은 싹을 잘 틔우고 열매를 잘 맺는 법이다.

계절과는 생뚱맞게 쟁기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쟁기질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는 마음에서다. 농부가 힘들여 쟁기질을 하는 이유는 땅의 힘, 땅심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흙을 갈아엎는 쟁기질, 다시 말해 흙의 순환이란 변화를 통해 땅은 싱싱한 기운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한 해 농사의 시작인 쟁기질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쟁기질이 이 시점에 대구경북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 쟁기질을 통해 이 지역의 땅심을 더 높여보자는 바람에서다. 아집과 편견, 폐쇄성, 독선, 시기와 질시, 내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 대구경북 발전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壁)들을 쟁기질로 깨뜨리고 극복하자는 말이다.

쟁기질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이 인물을 쓰는 데 있어 나이, 출신(出身)이란 보이지 않는 벽이다. 몇 해 전 지역 어느 단체에서 새 단체장을 뽑기 위해 경선을 하기로 했다.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뽑아 새 바람을 일으켜 보자는 뜻에서 관행이던 추대 대신 경선을 택한 것이다. 50대인 한 인사가 경선에 나서려 하자 곧바로 나온 말이 "가는 어데 아고?"(그 아이는 누구 자손인가)였다. 자질'능력은 살펴보지 않고 어른들도 가만있는데 어린(?) 아이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는다며 나무란 것이다.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며 집안 전체를 싸잡아 질책하는 뜻도 같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최근 이한구 의원이 차기(次期) 대구시장은 대구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50대 젊은 인사들까지 인재풀(Pool)을 넓혀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단 대구시장만이 아닐 것이다. 경상북도지사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기관'단체장이나 리더를 뽑는 데 있어서도 나이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질'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들이 더 많이 보일 것이고, 그 같은 사람들을 중용해 이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출신을 따지는 벽도 두껍다. 공무원 출신들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같은 광역 단체장은 물론 시장, 군수, 구청장 자리를 독점(獨占)하다시피 하는 흐름이 이 지역은 유달리 심하다. 교육감도 교장 출신들이 줄줄이 꿰차는 실정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기업인, 변호사, 정치인, 교수 등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을 단체장이나 교육감으로 발탁해 일을 시키고 있다. 단체장은 공무원 출신, 교육감은 교장 출신만 하라는 법은 없는데도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한 것은 지역민들이 '단체장=공무원 출신, 교육감=교장 출신'이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는 탓이 아닐까 싶다.

부산의 교육현장에서 혁신을 이끌며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성과를 내고 있는 설동근 부산시교육감. 17년 동안 선박회사를 경영한 덕분에 설 교육감은 CEO형 교육감으로 불린다. 교육감 하기에 따라 교육 현장이 달라지고, 교육감 리더십만큼 교육이 발전한다는 것을 설 교육감은 생생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부산 사람들이 교장 출신만 교육감을 해야 한다는 출신의 벽에 갇혀 있었더라면 설 교육감은 교육감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부산 교육의 업그레이드는 없었을 것이다.

'바보의 벽'이란 책이 있다. 해부학 교수이며 의사인 저자는 사람은 다 벽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의 벽 속에 갇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벽을 뛰어넘어야만 그 벽을 부서뜨려야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대구경북이란 이 지역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벽에 계속 갇혀 있다면 대한민국 발전에서 소외되고 끝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뽑으면 그 지역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사람을 쓰는 데 있어 부정적이고 고질적인 벽들을 깨야 할 것이다. 그 벽 속에 갇혀 쇠퇴할 것이냐, 벽을 깨는 노력을 통해 도약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이 지금 대구경북 앞에 놓여 있다.

李大現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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