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20분, 대구 경북고 본관 입구에 색다른 외모의 노신사가 도착했다. 환영 인사로 나온 학생들과 우리말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인 마이클 트래비스(Michael Travis·66)씨. 그는 43년 전인 1966년 어느 봄날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대구를 찾은 후 1969년까지 경북중·고와 대구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한국 근무 미 평화봉사단원 재방한(再訪韓) 초청 사업' 2차 방문단으로 이날 다시 대구를 찾은 트래비스씨는 옛 교정은 아니었지만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2시간 동안 학교 곳곳을 애틋한 눈길로 돌아봤다. 경북고 도상욱 체육교사는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형(도상권)의 안부를 전하며 그를 안내했다. 도씨의 형은 대구고 재학 시절 트래비스씨에게서 영어를 배운 제자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는 그는 우리말에 능숙했다. "주변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배웠다"는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학생들과의 기념촬영에서도 먼저 '김치'를 외쳤다. "경상도 사투리를 배운 것이 자랑스럽다"는 그는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질 때 꼭 "안녕히 계시이소"라고 마무리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2학년 12반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옛 이야기. 추운 겨울날 교실에 빽빽이 들어선 학생들과 나눴던 어색한 첫인사 얘기도 있지만 한국 이름(태라수)이 생긴 사연이 재미있다. "당시 교사들이랑 회식을 갔는데 '트래비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길고 어렵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한 국어 선생님이 '태라수가 어떠냐?'고 물었지요. 제 성 앞소리(트)와 비슷하고 'Taegu'의 앞소리인 태(太)에 빛날 라(羅), 막걸리를 좋아하니 수(水)라고 설명하시더군요."
트래비스씨는 한국 생활 중에 언제나 한국인과 어울렸고 한국 문화도 맘껏 즐겼다. 학교 야유회에서는 농악대와 뒤섞여 징을 연주하기도 했다. "저는 평화봉사단으로서 영어를 가르쳤지만, 사실 대구 사람과 학생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더 많습니다. 금전적으로는 가난했을지 모르지만 가족과 친구와의 삶에 있어 누구보다 부자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취재가 끝날 무렵 트래비스씨가 갑자기 기자에게 물었다. "제가 근무하던 당시 한국은 가족과 이웃 간 정이 넘치는 시대였습니다.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점을 배우려고 하는가요?"
1박2일의 공식 일정이 짧다며 하루를 더 대구에 머물기로 한 트래비스씨는 28일 다시 경북고를 찾아 교사·학생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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