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은 지난주 북구 칠곡지역에서 중학생 학부모들을 위한 진로·진학 설명회를 열었다. 고교 선택과 준비 방법, 진로 탐색의 중요성, 대학입학사정관제 대비 방법 등에 대해 알려주는 자리였다. 많은 학부모들이 귀를 기울였지만 설명회가 끝난 뒤 "수성구나 다른 시·도의 고교에 가는 게 실익이 없다고 해도 북구에는 믿을 만한 고교가 몇 없다"는 불만은 여전했다. 이 지역 중학생들의 수성구 고교 선호가 좀체 식지 않는 데다 최근 경북의 자율고에 진학하는 상위권 중3생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막기 위한 설명회였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라고 참여 교사는 말했다.
정작 교육청보다 다급하게 여겨야 할 북구의 고교들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탓이다. 자체 경쟁이 뜨거운 달서구 고교들이 지난달부터 앞다퉈 중학생 학부모 대상 입시설명회를 열고 달성군이나 동구의 고교들이 점차 경쟁에 동참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분위기다. 그러는 사이 중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은 갈수록 지역 고교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쟁을 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장의 논리가 교육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자사고·자율고 왜 강한가
지난달 대구의 여러 중학교에서는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사이에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다른 시·도의 자사고나 자율고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와 이를 막으려는 학교 측이 원서 작성을 두고 빚은 갈등이었다. 교장과 교사가 "대구의 고등학교에 보내도 충분히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며 설득했지만 "우리 아이 장래를 책임질 수 있느냐"며 물러서지 않는 학부모에겐 소용이 없었다.
"무엇 때문에 자사고나 자율고에 보내려 하느냐"고 묻자 한 학부모는 "입학 설명회에 가 봤더니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최선을 다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맞춰 학교를 운영하는데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사고나 자율고의 대학 진학 경쟁력은 일반계 고교에 비해 월등하다. 특히 진학지도에 앞서 진로지도를 중시하는 것이 눈에 띄는 공통점이다. 전주상산고의 경우 진로상담실과 진학상담실을 따로 두고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상담을 해 준다. 각 분야의 명사, 석학들을 초청해 다양한 직업 분야를 접할 기회를 주는 특강도 지난 6년간 70여차례나 진행했다. 학교 관계자는 "진로 결정이 제대로 돼야 대학 선택도 학생들의 희망에 맞게 최적화할 수 있고 학습 동기 부여도 절로 된다"고 했다.
이들 고교는 공통적으로 1학년 때부터 논술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시사적인 현안에 대한 배경지식과 문제해결 논리를 키우고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공부는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현대청운고 허석도 진학지도부장은 "상위권 대학에서는 수능과 내신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가 어려우므로 다양한 평가 방법을 모색한다"며 "통합교과형 논술과 심층면접 등을 통해 수험생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방향으로 입시가 진행되면 고1부터 다양한 독서와 논술 실력을 쌓은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가야 강해진다
입학사정관제는 올 들어 대학입시에서 본격화됐지만 자사고나 자율고, 영재학교 등에서는 이보다 빠른 추진 상황을 보인다. 올해 전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공주한일고의 경우 내신성적과 수상·활동내역, 인증시험 결과 등 서류를 제출하면 상담을 통해 검증한다. 학교 측이 보여주는 지원 학생들의 실적물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중학교 3년 동안 매일 써온 영어 일기장, 매주 5~10개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NIE노트, 수백권의 독서감상문을 담은 독서록 등 지원한 학생의 소양과 관심사, 잠재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최용희 입학관리실장은 "학생의 진로와 특성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더 꽃피울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진로·진학지도"라며 "입학사정관제 도입도 같은 취지"라고 말했다.
현대청운고가 실시하는 청운능력인증제는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관계없이 계속돼온 프로그램이지만 결과적으로 입학사정관제에 자연스럽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독서·국어·한자·한국사·영어·정보화 등 학교가 지정한 17개 분야 가운데 7개를 통과하면 인증해주는 형태로 준비과정에서 교과와 비교과에 걸쳐 다양한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것.
허석도 진학지도부장은 "대학들이 고교별 자료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 추천과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며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우리 학생의 수학능력을 물어올 때 경우에 따라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모든 교사가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대학입학사정관제라고 하면 아직도 "일부 대학에서 소수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라거나 "대학과 고교 모두 힘들어하기 때문에 몇 년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일반계 고교로서는 곱씹어볼 내용이다. 남들보다 앞서서 준비하면 성과를 얼마나 거두느냐와 상관 없이 자체의 경쟁력은 분명히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학교만의 색깔을 갖자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해 특기자 전형, 대학의 독자적 기준에 의한 전형 등으로 뽑는 인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수능과 내신만으로 선발하는 인원은 전체 모집인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30년 넘게 계속돼온 고교 평준화와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형태로 길러낸 학생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사회 현실은 고교 스스로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자율형 사립고와 기숙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확대를 통한 고교 다양화 정책의 수준을 넘어선다. 전국의 모든 고교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진로에 대한 꿈과 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고교마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고교를 선택해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번에 도입하는 고교 선택제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불리며 부작용만 낳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단순히 학군이나 외형적인 대학 진학 성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색있는 학교로 운영 중인 대건고 이대희 교무부장은 "자율고, 특색있는 학교, 과학중점학교 등의 프로그램에 보다 많은 고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며 "자기 학교만의 색깔을 만들지 못하는 학교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 이희갑 중등장학관은 "대구도 고교 선택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고교들이 학생들의 진로나 적성에 맞춰 다양화되지 못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교육청과 학교,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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