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높으나 높은 남게

높으나 높은 남게

이양원

높으나 높은 남게 날 권하여 올려두고

이보오 벗님네야 흔들지나 말으되야

나려져 죽기는 섧지 않으되 님 못 볼까 하노라.

"높으나 높은 나무 위에 나를 올라가라고 권해 올려놓고/ 여보게 친구 분들아 흔들지나 말아주소/ 떨어져 죽는 것은 슬프지 아니하여도 님을 보지 못할까 두렵구나"로 풀리는 시조다.

이양원(李陽元·1533~1592)의 작품이다. 1555년 진사에, 다음해 알성시에 급제했다. 명나라에 가서 명의 사료에 잘못 기록된 이성계의 조상을 바로잡았다. 형조판서, 양관 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 분투하였으며 영의정으로 승진되었다가 선조가 요(遼)로 건너갔다는 헛소문을 듣고 통한하여 8일간이나 단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자는 강직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당파싸움이 치열할 때 높은 자리에 오른 것 같다. 당파 싸움에 대한 작자의 분노와 원망이 시적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높은 나무를 높은 자리로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아마도 59세 우의정에 올랐을 때 지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다.

어조로 보아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자신이 원해서 오른 것이 아니라 권유에 의해 마지 못해 오른 것 같다. 초장 후구 '날 권하여 올려두고'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 중장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비난하거나 깎아내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종장에서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죽게 되더라도 섧지 않지마는 임금을 뵐 수 없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니 그의 신하됨을 짐작할 수 있겠다.

1500년대 후반기의 일이니 500년을 족히 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상생' 혹은 '윈-윈' 이라는 말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들은 쉬 잊어버린다. 어떤 자리에 오른 사람도, 올린 사람도 그 약속을 쉬 저버리는 것이다. 날이 새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말들 하지만, 사람의 질투나 시기 등은 어느 세월이고 어느 세상이고 비슷한 걸 보면 변하지 않는 것도 참 많은 곳이 세상이다. 그 중에 가장 달라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한다.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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