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 인사이드] 홈 팀에 분노하는 극성 팬들

최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 임시 홈 구장인 스타디오 올림피코 디 토리노 경기장에 불이 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11일 열린 2009-2010시즌 세리에 A 경기에서 유벤투스가 라이벌 AC밀란에게 0대3으로 완패 당하자 화가 난 일부 팬이 경기장 스탠드에 불을 지른 것. 패색이 짙던 후반 중반 이후 관중석 곳곳에 난 불이 점점 거세지면서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찰 등 관계자들도 진화나 진압 등 대처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유벤투스가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지 못한 데다 리그에서도 3위에 머무는 등 성적이 신통찮은 상태에서 '이탈리아 더비'라고 할 수 있는 AC밀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도 실망스런 경기 내용으로 패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떤 스포츠를 막론하고 홈에서 만큼은 팬들의 일방적이고 열광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는 게 보통이다. 특히 축구의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의 축구 열기는 남다르다. 원정팀의 혼을 쏙 빼놓기 일쑤다. 그러나 이러한 열성적이고 높은 충성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패배나 팀 성적에 대해선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경기장 화재 소동이 그렇다. 더 나아가 냉소적인 반응과 지나친 야유로 홈팀 선수들을 오히려 움츠러들게 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이다. 웅장하고 거대한 홈 경기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축구 사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레알 마드리드의 8만여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의 팀과 경기하는 것은 원정팀으로선 모든 것이 부담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레알 홈팬들의 광적인 응원 기세에 눌려 원정팀 선수들의 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경기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담을 가지는 쪽은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라고 한다. 축구에 대한 애정과 홈팀에 대한 충성도라면 세계 최고인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지만 이러한 자존심이 지나쳐 선수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실제 레알 팬들은 자신의 팀이 기대 이하의 경기를 하면 오히려 상대팀을 응원하거나 야유를 보내 홈팀 선수들을 더욱 주눅들게 한다. 졸지에 홈팀과 원정팀의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정팀이 더 맘 편히 경기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 이러한 레알 팬들의 응원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경기 자체를 즐기려고 경기장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즐겁게 해 보라'라는 식으로 마치 공연이나 쇼를 보러 온 관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 물론 프로 축구선수와 구단이라면 팬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최우선이고 축구 팬이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좋은 경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 그러나 레알 팬들은 축구와 홈팀에 대한 높은 애정과 충성도에 비해 애정 담긴 성원, 관대함·인내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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